최근 기업 M&A(인수 · 합병)가 성사 직전에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국내 기업들이 조심스럽게 M&A에 나서고 있지만 매수자와 매도자 간 '적정가격'에 대한 눈높이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중소형 저축은행,건설업체,자산운용사 등이 시장에 매물로 대거 나오면서 부실자산에 대한 입장 차가 큰 것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요인이다.

현재 M&A에 나서는 기업 대부분이 예전처럼 차입금이 아닌 자체 자금을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는 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금융위기 이후 철저하게 '매수자 우위의 시장'(Buyer's market)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부국증권은 최근 경기 부천 소재의 삼신저축은행 인수 검토를 중단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삼신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국 인수가격에 대한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포기했다. 삼신저축은행 대주주는 500억원 수준에 팔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부국증권 측은 이의 절반 가격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의 코스닥 치과용 임플란트 제조업체 오스템임플란트 인수 무산도 같은 맥락이다. SK케미칼은 토탈 헬스케어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임플란트업체 인수를 검토했지만 상당한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국 M&A가 물건너 갔다.

키움증권은 알파에셋자산운용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3주 만인 협상이 결렬됐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지난해 말 푸른2저축은행 인수가 무산된 데 이어 두 번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얼어붙었던 M&A시장이 경기 회복과 함께 서서히 풀리고 있지만 협상 결렬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 M&A담당 임원은 "기업들이 M&A에 나서고 있지만 자체 자금으로 신중하게 타진하고 있어 부르는 가격도 매우 보수적(낮은 편)"이라며 "매물로 나온 기업들도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헐값에 넘긴다는 생각이 많아 서로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적정가격을 나타내주는 기업가치 대비 현금영업이익(EV/EBITDA)은 업종별로 6~10배가 평균이지만 최근 매각가는 이보다 못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EV/EBITDA는 기업이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을 이용,어느 정도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부실자산에 대한 매수 · 매도자 양측의 이견이 상당한 점도 M&A가 무산되는 이유로 꼽힌다. 키움증권이 푸른2저축은행 인수를 포기한 것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처리 문제에 대한 협상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알파에셋자산운용도 비슷한 이유에서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M&A업계 관계자는 "알파에셋자산운용이 판매했던 일부 펀드가 큰 손실을 보고 있어 투자자 소송으로 이어져 배상 책임이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면책조항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결렬됐다"며 "키움증권으로선 펀드시장 침체로 알파에셋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운용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M&A컨설팅업체 ACPC의 남강욱 부사장은 "M&A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대부분이 자체 자금으로 신중하게 타진하면서 서두를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협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게임하이는 CJ인터넷 등에서 인수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두 달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KTB투자증권도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서울상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금융위기 직후 무리하게 M&A를 추진한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로 발이 묶였던 분위기와는 달리 M&A에 관심이 다시 늘고 있지만 활성화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