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보안전시회 '인터섹(INTERSEC)'.허니웰(미국),히타치(일본)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보안장비 기업 800개사의 부스가 빼곡히 들어찬 이곳에 한 동양인 청년이 나타났다. 한손에는 은색 케이스,다른 한손엔 제품 카탈로그를 든 차림새는 영락없는 '영업사원'.CCTV · 보안카메라를 만드는 신생 중소기업 이로닉스의 조규득 사장(39)이었다.

2006년 회사를 세운 지 고작 2년,시제품 하나만 달랑 손에 든 채 해외 시장을 개척해보겠다고 나섰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몸으로 부딪혀 보자'는 생각 에 아무 부스나 찾아갔다. "좋은 기능을 갖춘 CCTV가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그러나 그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는 바이어는 한명도 없었다. 그렇게 사흘간 모든 부스를 세 번씩 돌았다. 발바닥이 갈라지도록 뛰었다. 그러나 수주실적은 '제로'(0).

그로부터 2년 뒤,이 회사의 거래선은 전세계 17개국 300곳으로 늘어났다. 도시바 히타치 허니웰 등 세계적 보안기업들도 주요 고객이다. 지금은 대기업이 장악한 보안장비 업계에서도 짱짱한 실력을 갖춘 '강소(强小)기업'으로 통한다.

이로닉스의 성장 비결은 철저한 '최지성식(式) 부보상 영업전략'이었다.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이 1980년대 초 반도체 해외영업 시절 007가방 하나 들고 유럽 전역을 밤낮으로 누볐던 방식을 조 사장도 똑같이 행동으로 옮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07년 11월 첫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거래선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급한 마음에 잡지와 인터넷을 뒤져 국내 기업 200곳에 이메일을 보냈죠.이런 제품 필요없냐고…." 해외 전시회 영업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인터섹'을 시작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갔다. 자주 얼굴을 비치다보니 해외 기업 관계자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8년 5월,캐나다 보안기업 마치네트웍스에서 납품하라는 연락이 왔다.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확보한 해외 거래선이었다.

성과가 나타나자 조 사장은 해외영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터키,일본,대만 등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비롯 우즈베키스탄,베트남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지난해에도 18개국을 돌면서 100일가량을 해외에서 보냈다. 발품을 판 대가는 정직했다.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 2008년 100곳의 해외 바이어를 확보한 데 이어 지난해엔 200곳,올해는 300곳의 바이어를 확보했다. 지난해엔 미국 방산기업인 로보텍스에서 한국으로 찾아와 물건을 주문할 정도로 기술력 좋은 회사란 입소문도 탔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원 이상.지난해(20억원)보다 5배나 높여 잡았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