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GS수퍼가 2005년 4월 충청남도 당진읍에 점포를 열었을 때 주차장 월 임대료는 285만원이었다. 5년 계약이 끝나는 이달 중순부터는 3배 가까이 오른다. 8일 만난 이종민 GS수퍼 당진점장은 주차장 임대료가 너무 올랐다고 푸념하면서도 이 점포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전국 180여개 GS수퍼 점포 가운데 객단가(손님 1회 방문시 평균 구매액) 1위,총 매출 2위가 바로 당진점이다.

#2.현대제철이 2004년 초 일관제철소 건설 준비를 위해 11명의 태스크포스팀을 파견했을 때만 해도 당진군 송산면 해안가는 갯벌과 양식장만 있던 쓸쓸한 어촌마을이었다. 약 6년이 흐른 올해 4월,직원 11명은 3000여명으로 늘었고,협력업체와 건설 인력까지 합하면 약 17만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됐다. 해안에서 시작한 '천지개벽'은 도시를 키워 서울 압구정 성형외과와 강남 유명 영어학원까지 이곳에 들어왔다.

충남 당진이 자립형 기업도시의 성공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제철을 필두로 2005년 이후 800여개의 기업이 당진행(行)을 결정했다. 2004년까지 11만명에 머물던 인구도 올해 15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돈이 돈다

당진이 철강 기업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돈'이 아랫목,윗목할 것 없이 원활하게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가 서울 강남 뺨칠 정도다. 돈이 풀리자 사람이 모여들고,신축 건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어서고 있다. 도시는 전에 없던 일거리와 업종이 생기면서 세포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준공] 당진의 개벽…매년 인구 5000명 늘어 2015년엔 '제2울산'
당진의 전세난은 도시의 성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허삼정 현대제철 물류팀 차장은 "가족을 데려온 직원들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며 "막상 분양을 받으려고 해도 전용면적 85㎡(옛 32평) 아파트 값이 3억원에 육박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이후 1196만8000㎡의 도시 · 택지 개발사업을 완료하고,2012년까지 예정된 개발사업도 2095만4000㎡에 달하지만 주택 수요는 여전히 공급을 웃도는 양상이다.

'그랜저 트렁크에 삽 싣고 논에 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골목마다 빼곡히 주차한 차들이 즐비하다. 당진군청에 따르면 당진군 인구 14만명이 보유한 자동차는 5만5467대(2008년 기준)에 달한다. 당진군청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당진군에 등록하지 않고 외지에서 유입된 차량까지 합하면 4인 가족 한 세대당 2대꼴로 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라며 "막대한 토지보상비가 풀린 데다 현대제철 등 대기업의 진입에 따른 효과"라고 설명했다.

대리운전업계는 전국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당진읍내에서 현대제철의 직원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송악이주단지까지 거리는 약 15㎞에 불과하지만,3만5000원을 줘야 할 정도다. 당진 대리운전업체 관계자는 "돈이 되기 시작하자 엄마와 아들,혹은 형제끼리 대리운전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당진읍 삼성114 공인중개소의 이경남 사장은 "당구장치고 장사 안 되는 곳이 없고,롯데마트가 있는 원당 신도심은 매일 저녁 정체현상을 빚는다"고 말했다.

◆기업의 힘

기존에 없던 업종의 등장도 당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 강남지역에서도 수강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어학원 '원더랜드'가 지난 1월 당진읍에 문을 열었다. 원더랜드 관계자는 "작년 12월에 첫 설명회를 열었을 때 수요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며 "5~6세반의 경우 10명씩 4개반을 구성하려고 했는데 어머님들의 요청이 빗발쳐 반을 6개로 늘리고 원어민 강사도 2명에서 1명을 더 불렀다"고 설명했다. 원더랜드의 월 학원비는 58만원이다.

서울 압구정동에 본원을 둔 성형외과도 당진 원당지구 신도심에 생겼다. 성형외과 전문의 2명을 두고,비서실장의 전문 상담도 해 주는 이곳은 수천만원의 성형비를 지급하는 '큰손'들의 발길이 잦다. 당진구청 뒤편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거리엔 '캘빈클라인 진''리바이스' 등 유명 청바지 브랜드숍들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골프 인구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송산2산업단지 인근에 있는 파인스톤CC는 주중 그린피 13만원,일요일에 18만원을 줘야 할 정도로 비싼 값임에도 불구하고 주중,주말할 것 없이 '풀 부킹'이다. 토지보상비를 두둑히 챙긴 땅부자들이 몰리면서 캐디피 인심이 후한 곳으로 소문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을 남편 따라 당진을 찾은 '아줌마부대'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GS수퍼만 해도 87명 직원 가운데 당진 출신은 10%를 밑돈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 토지보상비가 풀린 데다 시골 정서상 서비스업 종사를 꺼린다는 게 이곳 사람들 얘기다. 노동시장도 공급자 우위다. 이종민 GS수퍼 당진점장은 "오후 8시 이후 밤근무자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지금도 당진은 끊임없이 자기 번식 중이다. 한보 부도와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2004년 11만8700명까지 줄어든 인구는 작년 말 현재 13만8800명에 달했다. 1999년 8332세대에 불과하던 아파트는 2만4621세대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다른 지방 도시와 달리 아이들이 없어 학교를 합쳐야 하는 일은 당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청은 당진군 학교 통폐합을 전면 중단했다.

상권도 커졌다. 10년 전 950개이던 음식점이 작년 말 2901개로 급증했다. 군 단위지역으로 당진처럼 해마다 5000명 이상 인구가 늘어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15만명을 넘어서고 '시(市)'로 승격될 날도 머지 않았다. 오는 2015년엔 지금의 두 배 수준인 25만명 이상이 당진에 터를 잡아 제2의 울산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기업 투자의 힘이다.

당진=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