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년 전 만들어진 핀란드 국가(國歌)에는 '핀란드는 가난하고 영원히 가난할 것이다'란 가사가 아직도 있어요. 가난하고 작은 국가가 '노키아'와 '리눅스'의 나라로 세계 무대에 알려진 건 바로 인적자원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혁신적인 아이디어,그리고 화합의 문화 덕분입니다. "

내과 전문의로 핀란드 보건사회부 차관을 지낸 일카 타이팔레 박사(68)가 지난 2월 국내에서 출간된 《핀란드가 말하는 핀란드 경쟁력 100》(비아북 펴냄)을 알리기 위해 주한 핀란드대사관의 초청으로 9일 내한했다.

핀란드는 매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세계경제포럼(WEF)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빈번히 1위를 차지하는 나라다.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자리잡은 인구 530만명의 작은 나라가 가진 100가지 경쟁력은 과연 무엇일까.

전 · 현직 정치인과 학자,연구소,시민 · 사회단체 대표 등 거의 100명에 달하는 저자가 '강소국' 핀란드를 만든 국가행정과 사회정책,국민보건,직업교육,교육 분야에 대해 분석한 것을 타이팔레 박사가 책으로 엮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핀란드가 정보기술(IT)만 연상시키는 것 같아 아쉬웠다"며 "오늘날 핀란드를 만든 밑거름인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타이팔레 박사는 "균일하게 높은 수준의 공교육 시스템이 젊은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냈고 노사와 정부,정치권이 협력하며 상생하는 법을 깨달았던 게 오늘의 핀란드를 만든 큰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과격했던 노동운동은 1968년 노 · 사 · 정 간 임금정책협정 체결 이후 40년 넘게 '3자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근로자의 95%가 노조에 가입했고 무려 7만개의 비영리 및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도 핀란드의 정치적 안정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여성인력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사회 분위기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타이팔레 박사는 "1907년 세계 최초로 여성 의원을 19명이나 한꺼번에 배출한 이후 현재 전 부처 장관 중 절반이 여성"이라며 "공격적인 육아정책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소개했다. 핀란드에서는 시의회나 단체 주요 보직의 40% 이상을 무조건 다른 성(性)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스물한 살의 토르발스라는 핀란드 청년이 원천코드를 전 세계에 공개하며 발전시켜 온 개방 소스 프로그램 '리눅스'와 같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국민들의 자세도 중요하죠."

그는 "소득의 18~20%에 달하는 높은 지방자치세나 무상교육 제도 등은 '공동의 복지'를 지향하는 북유럽 특유의 전통이라 다른 나라에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이웃을 배려하고 다 같이 잘 살자는 구성원 간의 평화로운 합의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대해 묻자 그는 대뜸 "학생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다른 나라에 관심이 많은 나라,'삼성'과 'STX'가 한국 기업"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1971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별반 북한과 국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한국이 놀랍게 성장해 어떤 면에서는 핀란드와 닮아있다"고 말했다.

타이팔레 박사는 헬싱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다 1997~1998년 보건사회부 행정차관을 지냈다. 3선 의회의원(국회의원) 출신으로,현재 헬싱키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함께 내한한 부인 바푸 툴리키니 타이팔레 교수는 먼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내 보기 드문 장 · 차관 부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