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LG텔레콤 부회장(62)의 요즘 화두는 '탈(脫)통신'이다. 통신 사업을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기존 통신업체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이다.

이 부회장은 앱스토어(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 온라인 장터)에서 그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앱스토어에 있는 수만개의 프로그램은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회사들이 만든 게 아닙니다. 소비자이기도 한 일반 개발자들이 만든 것인데 LG텔레콤도 이런 방식의 서비스 플랫폼을 내놓을 겁니다. "

그는 일종의 '프로슈머(생산자+소비자)형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철저히 소비자 하나하나에 맞춘 이른바 '퍼스널라이즈드(personalized · 개인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얘기다. "흔히들 통신 시장을 레드오션(치열한 경쟁 시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빨간색 안경을 끼고 있으니 빨강으로만 보이는 것이죠.안경을 파란색으로 바꾸면 블루오션(새로운 유망 시장)이 되는 겁니다. "

생산자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 모두가 안경을 바꿔 쓸 생각을 안 했다"며 "회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직원들의 이런 사고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5일이면 벌써 취임 100일이 되네요. 탈통신 전략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셨나요.

"이제 핵심은 컨버전스(융합)입니다. 지능화 시스템,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묶은 솔루션 등에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작정입니다. 통신 산업 자체가 사양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단말기와 빨랫줄(통신망)에서 돈 벌기는 힘듭니다. 새로운 통신 시장을 만들어야죠.통신 서비스가 의료,관광,자동차,조선 등의 산업과 활발한 접목을 이루고 있듯 LG텔레콤의 장기적 전략도 이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융합이라고 하면 '제품+제품'의 형태였지만 이젠 '제품+서비스' 또는 '서비스+서비스'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고,그 안에서 해답을 찾을 것입니다. "

▼LG텔레콤이 스마트폰 사업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요. 복안은 있습니까.

"우선 4세대(G) 이동통신 서비스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주파수를 받게 되는 내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면 내후년 이맘 때(2012년 상반기)면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이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을 바꿀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스마트폰의 미래는 갈수록 인터넷 중심으로 진화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앱스토어 역시 각각의 회사가 운영하는 폐쇄형 구조가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란 얘기죠.이렇게 되면 스마트폰엔 기본적으로 필수 애플리케이션(앱 응용프로그램)들이 미리 탑재된 형태로 나올 것입니다. 나머지 앱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다운로드하는 형식으로 바뀔 것으로 봅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시스템 기반은 이미 갖춰졌습니다. 당분간은 다양한 앱스토어 시장이 커지겠지만 이것이 웹으로 이동하면서 내년이나 내후년 쯤에는 웹 기반의 앱스토어로 변화할 것입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공동 앱스토어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스마트폰은 콘텐츠로만 봤을 때는 '깡통폰'이 될 것이고,지금의 콘텐츠 경쟁은 기능이나 솔루션 쪽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

▼LG텔레콤만의 강점은 뭘까요.

"LG텔레콤을 통신 시장에서 3등이라고 하는데 하드웨어 면에서 초당 100메가비트(Mbps)급의 고급 인터넷 망이 각 가정에 들어가 있고 임직원들은 LG 계열사 근무를 통해 전자와 통신 등을 두루 경험한 인재들입니다. 하드웨어 · 인력에 LG란 브랜드 파워를 결합하면 시장 파괴력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6월엔 사명도 바꿀 계획입니다. 회사 로고도 바꾸고 탈통신 전략을 위해 '텔레콤'이란 말도 빼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서비스 출시를 위해 합종연횡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LG 계열사뿐만 아니라 경쟁사와도 언제든지 제휴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3사 합병 이후 조직 융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요.

"통합LG텔레콤의 당면 과제는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통합LG텔레콤은 기존 LG텔레콤 · 데이콤 · 파워콤 3개의 회사가 합쳐진 것일 뿐만 아니라 각각의 뿌리가 다른 3개의 이질적 문화까지 섞여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로 뭉치기 힘들어 보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다양한 문화가 모여 있는 것이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비전으로 응집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통신비 인하를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비자들의 요금 걱정을 싹 없애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케팅 경쟁을 자제하기 위해서라도 곧 휴대폰 요금을 크게 내릴 계획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화 요금을 통화 요금으로 보진 않습니다. 일종의 정보 대체 요금으로 생각하죠.쉽게 말해서 과거에 증권회사 가서 해결해야 했던 일들이 지금은 휴대폰 하나로 모두 끝납니다. 시간과 교통비 등에 대한 대체 비용으로 볼 수 있겠죠.휴대폰 요금이 비싼 것이냐고 말한다면 그 효용성을 생각할 때 꼭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통신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돈을 많이 번다고 항상 이야기하죠.하지만 지금은 통신이 공기처럼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가치는 아주 크지만 요금에 대해선 저항이 큰 거죠.요금 인하는 숙제지만 지금은 내려야 할 수밖에 없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에서 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을 제한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데 통신사들이 합의를 이룬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의 경우 후발 사업자엔 좀 더 혜택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미 50m 앞선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가 똑같이 뛰라고 하진 않았다는 거죠.하지만 이제는 후발 사업자라고 해서 그렇게 혜택을 보긴 힘든 상황입니다. 다만 마케팅비를 매출 20%로 제한하자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매출이 높은 상위 업체들은 1인당 마케팅비를 더 쓸 수 있게 됩니다. 적어도 1인당 마케팅비는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바둑을 잘 두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둑과 경영이 비슷한 점이 있나요.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죠.바둑에선 포석,잔수,끝내기 모두 잘해야 합니다. 끝내기의 경우 오히려 더 머리를 써야 하죠.30~40수 정도 남았을 때 어떻게 둘 것인지의 방법이 수천 가지가 넘습니다. 경영도 마찬가지죠.큰 그림도 잘 그려야 하지만 세세한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일의 마무리를 정교히 해야 하는 것이 바둑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바둑을 두면서 수가 잘 안 보이면 뒤로 물러나곤 하는데 그러면 꼭 죽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