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22) 지자체 공천 주민에 돌려줘라
자치라는 말은 스스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참된 지방자치라면 적어도 공천권은 정당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나는 미국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전 시의원과 시장을 역임해 미국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당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자치단체장은 정치가라기보다 그 지방을 대표하는 봉사자다. 때문에 뉴욕 같은 큰 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시장이나 시의원 후보들은 소속당을 밝힐 필요가 없다. 주민들도 어느 당인지 관심이 없다. 인물을 보고 찍기 때문에 어느 당 소속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 구의원 · 구청장까지 공천을 해야 하느냐고 한 국회의원에게 물었더니 지방에 가면 그 지방 부자들만 당선하는 악순환 때문에 서민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당 공천 제도가 불가피하다는 게 답이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주민들이 무식해서 당이 대신 나서 후보자를 선택해 준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때마다 왜 당이 자꾸 생기는지,또 왜 당사 주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해가 간다. 공천권 때문이다. 현재 정당이 10개쯤 있다고 들었다. 탈당을 했다 새로 당을 만들고 또 합치는 과정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 기자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 같으면 기자들이 아예 그런 자리엔 가지도 않는다. 국민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의원들이 미국까지 와서 교포들을 모아 놓고 다음 선거에 6명 정도의 비례대표가 미국 교포에게 배정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국 정치 참여 의사가 있는 많은 교포들의 마음을 잔뜩 흔들어 놨다. 선거운동도 안 하고 당에서 임명한다는 것에 많은 교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는 것이다. 몇몇 인사는 당사 주위를 서성거리며 비례대표 자리를 얻기 위해 인맥 학맥을 동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역 주민들을 못 믿어 당이 대신 훌륭한 후보자를 선택해 주었다면 왜 243명의 기초단체장 중 94명이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자그만치 40여명이 옷을 벗었는지 궁금하다. 차라지 지역 주민들에게 맡겨 두었다면 이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 미 연방 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