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간판 정보기술(IT) 회사인 구글,인텔,IBM,애플이 서로 상대회사 인력을 스카우트하지 않기로 짬짜미한 혐의로 미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의 조사는 기술 분야에서 인력 채용과 관련해 광범위한 담합이 있었는지와 함께 이런 담합이 고숙련 컴퓨터 전문가들에게서 고임금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사 진행 과정에 밝은 소식통은 1년여 이상의 조사를 통해 법무부는 인력 채용과 관련한 담합이 경쟁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이런 협약을 맺었을 경우 IT회사에 근무하는 컴퓨터 숙련자나 엔지니어들은 더 나은 임금이나 조건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제한받기 때문에 반독점법을 비롯한 경쟁 관련 법 위반 소지가 높은 것으로 미 법무부는 보고 있다.

법무부 반독점국은 실질적인 법 위반 결론을 내리기 앞서 10여개 대기업의 고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원 채용 방식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경쟁사 간 이런 합의가 기업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격 담합만큼이나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높다고 판단할 것으로 반독점법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컨설팅회사인 컴파스렉세콘에서 반독점 전문가로 활동하는 문영배 부사장은 "인력 시장에서 공정경쟁을 저해해 종업원들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면 담합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로펌인 코젠오코너의 멜리사 맥스먼 반독점 전문 변호사는 "가격을 담합한 것은 아니지만 비용에 대해 합의한 만큼 관련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아니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 담합과 관련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다는 것은 사안 자체가 형사상 범죄 요건에 해당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최종 결론에 이르지 않았지만 법무부가 담합 판정을 내리면 IT업계 임직원들이 실익을 따져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에드워드 바비니 IBM 대변인은 "여타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직원 채용에 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 조사를 받아왔다"면서 "정부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사의 척 멀로이 대변인은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조사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 회사의 직원 채용 방식은 적법한 것이며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른 IT업체들도 채용과 관련한 업계 합의는 사업 파트너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흔히 이뤄지는 것이라며 임직원들의 급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 자문 변호사들은 IT업계 간 합의는 노동시장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 다른 인력의 IT산업 진출 동기를 짓밟아 전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에서 숙련 컴퓨터 기술직은 기본급으로 평균 18만~21만달러를 받는다. 경쟁사에서 스카우트 대상이 될 정도의 핵심 인력은 통상 스톡옵션과 보너스까지 추가로 받는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