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의 공동중계 협상이 무산될 경우 KBS는 독점중계권을 지닌 SBS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민 · 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에 대해 SBS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맞서 양사 간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SBS가 우릴 속였다,KBS 주장=조대현 KBS부사장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SBS가 2010년 월드컵 올림픽 중계권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KBS와 MBC를 속이고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며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2006년 5월30일 KBS 정연주 사장,MBC 최문순 사장,SBS 안국정 사장이 '코리아 풀'을 구성해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방송권을 공동 확보하기로 합의했지만 SBS 측은 이미 5월8일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IB스포츠와 올림픽 및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 구매키로 비밀리에 계약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조 부사장은 이어 "'코리아 풀'에 합의해 놓고 중계권을 단독 구매한 SBS의 행태는 KBS와 MBC의 손발을 묶어 놓은 업무 방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소송 제기는 협상 압박용=조 부사장은 "우리의 진실 규명 노력은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월드컵 공동 중계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조치"라며 "SBS는 지상파 3사 간 합의정신으로 돌아와 달라"고 촉구했다. 월드컵 공동중계 협상에서 SBS 측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KBS의 설명이다.

남아공 월드컵 방송권의 가치 상승,단독 중계 협상을 진행하며 감수한 위험 부담 등 계량화할 수 없는 비용들을 SBS가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6년 5월 지상파 방송 3사는 대형 국제경기를 독식해온 IB스포츠에 공동 대응하고 중계권료 협상을 유리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SBS는 3개월 뒤인 8월 올림픽 중계권을 7250만달러,월드컵 중계권을 1억4000만달러에 각각 단독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KBS는 "'코리아 풀'의 입찰금액을 미리 알고 이보다 각각 950만달러,2500만달러 많이 써내 낙찰받은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국부 유출"이라고 주장했다.

◆SBS,"터무니 없다" 반박=KBS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SBS 측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SBS 관계자는 "SBS와 IB스포츠 관련 문건은 계약서가 아니라 중계권을 확보했을 때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자는 합의문"이라며 "중계권을 확보하면 별도 계약을 하자는 내용이 문건에 씌여 있다"고 말했다.

SBS가 3사 간 합의를 깬 것에 대해서는 "그해 2월 KBS가 지상파 3사 간 합의를 깨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중계 패키지를 단독 구매해 SBS로서는 생존 차원에서 IB스포츠와 접근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입찰가격을 미리 알았다는 사실과 국부유출이란 주장도 터무니 없다며 일축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당시 2010년과 2012년,2014년,2016년 등 4개 동 · 하계 올림픽 중계권을 구입하려면 최소 6300만달러 이상을 써내야 입찰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KBS 측은 그 가격이면 살 수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IOC 측은 구매 협상과정에서 그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해왔고 950만달러 많은 수준에 타결지었다는 설명이다. 월드컵 중계권료도 마찬가지였다고 SBS 측은 설명했다.

◆법적 처벌 어려울듯=양사의 분쟁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SBS를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방송학계에서는 그동안 올림픽과 월드컵을 3사가 똑같이 방송하는 것은 전파 낭비라고 비판해왔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SBS가 독점 중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이 확대됐다는 평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