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통계…경제근간 '흔들'] (上) 12년 이어온 노동패널 조사 중단…학계 "통계 후진국"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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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정부 인식이 문제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진아씨(28)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가 눈문에 쓰려 했던 통계 결과 발표가 갑자기 미뤄졌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 김씨는 "한 가정이 외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부채를 늘리고 줄이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하는 노동패널조사를 활용할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당초 6월께 발표될 예정이던 11차연도(2008년) 조사 결과를 오는 11월 이후에나 낸다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8월 졸업이 예정돼 있어 논문 내용을 바꿔야 할지 고민"이라고 전했다.
학계에 '노동통계 비상'이 걸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매년 5~6월에 내놨던 노동패널조사(KLIPS) 11차연도 결과 발표가 5개월 이상 미뤄질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올해(13차연도)는 아예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관련 연구논문이나 보고서를 준비하던 학자들과 연구원들은 이 소식을 접한 뒤 부랴부랴 논문의 얼개를 다시 짜고 있다.
올해 노동패널조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조사를 맡아 온 노동연구원의 지난해 파업과 직장폐쇄 사태에서 비롯됐다. 노동연구원은 박기성 전 원장과 단체협약 폐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작년 9월부터 장기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지난해 말 끝났으나 노동부는 노동연구원에 신규 과제를 발주하지 않고 있다. 패널조사와 데이터 정리에 쓸 예산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당초 6월 발표 예정이던 2008년도 조사 결과는 11월로 미뤄졌다. 지난 2월 준비작업을 시작한 뒤 이달 초부터 이뤄져야 할 올해 노동패널조사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조사를 할지,안 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비판 여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가적인 통계 자원을 노사문제로 한 해 거르거나 없앨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노동패널조사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패널조사는 중단 없이 오랫동안 축적하는 것이 기본이고 횡단면 조사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전국종단통계(NLS)는 1966년부터,전국청소년종단통계(NLSY)는 1979년부터 이뤄지고 있다"며 "어렵게 12년을 이어온 조사를 쉽사리 중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후진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도 "데이터의 정확성 · 신뢰도 면에서도 노동패널 조사만한 데이터가 없다"며 "통계가 올해 나오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패널조사로만 할 수 있는 연구가 굉장히 많다"며 "예컨대 장기실업 상태인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더 빨리 취업하느냐를 파악하려면 시간 흐름에 따른 추적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용현씨는 "30년 이상 패널조사가 축적되면 노동시장에서 실직한 사람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양한 세대간 조사까지도 가능해진다"며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을 살펴보고 외환위기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올해분 조사를 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큰 문제"라고 했다.
국제 비교연구를 진행하려던 학자들도 고민에 빠졌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 박사는 "지난달부터 국제비교가능패널(CNEF)에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호주와 함께 한국의 노동패널조사가 들어갔다"며 "국내 학자는 물론 다른 나라의 학자들도 비교연구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부에서는 패널조사를 노동연구원이 아닌 민간에 넘기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학계는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사 시기를 이미 놓쳐 계절적 변동요인이 생긴 마당에 노동연구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조사를 진행하면 방문 · 면접조사 방법이 달라져 통계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 노동패널조사=한국노동연구원이 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비농촌지역에 거주하는 5000세대를 패널로 선정해 해마다 4~9월에 방문, 경제상황 · 소득과 소비활동 · 교육과 훈련 상황 등을 자세히 물어보는 조사다. 1988년 처음 시작해 작년(12차연도)까지 꾸준히 진행됐다. 국내 노동 관련 통계 중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사람과 가정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조사(종단면 조사)는 노동패널조사가 유일하다.
학계에 '노동통계 비상'이 걸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매년 5~6월에 내놨던 노동패널조사(KLIPS) 11차연도 결과 발표가 5개월 이상 미뤄질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올해(13차연도)는 아예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관련 연구논문이나 보고서를 준비하던 학자들과 연구원들은 이 소식을 접한 뒤 부랴부랴 논문의 얼개를 다시 짜고 있다.
올해 노동패널조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조사를 맡아 온 노동연구원의 지난해 파업과 직장폐쇄 사태에서 비롯됐다. 노동연구원은 박기성 전 원장과 단체협약 폐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작년 9월부터 장기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지난해 말 끝났으나 노동부는 노동연구원에 신규 과제를 발주하지 않고 있다. 패널조사와 데이터 정리에 쓸 예산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당초 6월 발표 예정이던 2008년도 조사 결과는 11월로 미뤄졌다. 지난 2월 준비작업을 시작한 뒤 이달 초부터 이뤄져야 할 올해 노동패널조사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조사를 할지,안 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비판 여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가적인 통계 자원을 노사문제로 한 해 거르거나 없앨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노동패널조사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패널조사는 중단 없이 오랫동안 축적하는 것이 기본이고 횡단면 조사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전국종단통계(NLS)는 1966년부터,전국청소년종단통계(NLSY)는 1979년부터 이뤄지고 있다"며 "어렵게 12년을 이어온 조사를 쉽사리 중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후진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도 "데이터의 정확성 · 신뢰도 면에서도 노동패널 조사만한 데이터가 없다"며 "통계가 올해 나오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패널조사로만 할 수 있는 연구가 굉장히 많다"며 "예컨대 장기실업 상태인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더 빨리 취업하느냐를 파악하려면 시간 흐름에 따른 추적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용현씨는 "30년 이상 패널조사가 축적되면 노동시장에서 실직한 사람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양한 세대간 조사까지도 가능해진다"며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을 살펴보고 외환위기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올해분 조사를 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큰 문제"라고 했다.
국제 비교연구를 진행하려던 학자들도 고민에 빠졌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 박사는 "지난달부터 국제비교가능패널(CNEF)에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호주와 함께 한국의 노동패널조사가 들어갔다"며 "국내 학자는 물론 다른 나라의 학자들도 비교연구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부에서는 패널조사를 노동연구원이 아닌 민간에 넘기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학계는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사 시기를 이미 놓쳐 계절적 변동요인이 생긴 마당에 노동연구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조사를 진행하면 방문 · 면접조사 방법이 달라져 통계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 노동패널조사=한국노동연구원이 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비농촌지역에 거주하는 5000세대를 패널로 선정해 해마다 4~9월에 방문, 경제상황 · 소득과 소비활동 · 교육과 훈련 상황 등을 자세히 물어보는 조사다. 1988년 처음 시작해 작년(12차연도)까지 꾸준히 진행됐다. 국내 노동 관련 통계 중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사람과 가정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조사(종단면 조사)는 노동패널조사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