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이 내일부터 발효다. 새로운 배출 규제가 적용되고 장기적으로는 백조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해 신성장 동력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환경부와 지식경제부의 권한쟁탈전만 요란하고 정작 산업계는 뜨악하다. 미국이 ℓ당 17㎞의 자동차 연비 규제에 반발하는 것이 차라리 안심된다는 식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는 것은 아마도 정부 보조금을 노리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시장성이 없으니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고 공짜 돈은 언제나 시장을 왜곡시킨다.

여하튼 녹색성장은 이 개념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이후 불과 40여년 만에 세계 정치의 간판 아젠다가 되는 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교토에서 코펜하겐에서 유엔에서,그리고 허다한 세계적 원탁회의에서 녹색은 새로운 정치종교로 부상한 지 오래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환경론적 경고를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이제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낄 정도다. 공포 산업의 대성공이다. 그러나 진짜 불편한 진실은 그 반대다. 이산화탄소 온난화론은 증거가 부족하고-증거가 없다는 학자도 많다-과장되었으며,반대론을 펴는 학자들은 공론의 장에서 조직적으로 탄압 · 봉쇄 내지는 축출된다. 북극곰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산성비-대머리는 헛소동으로 밝혀졌으며 산호섬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이 아닌 인구 과잉 때문에 재앙을 맞고 있다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거의 없다. 환경 종말적 주술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광우병 소동과 같은 TV 단골 메뉴다. 과학의 용어를 차용한 비과학적 주술이 횡행하는 것은 중세 아닌 계몽기 초반에 마녀사냥이 그토록 횡행했던 과정과도 유사하다. 인간 사고의 내밀한,그리고 과학이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는 비극이다. 영화 아바타는 그런 선전광고의 백미다. 문명을 저주하고 자연 정령주의를 전파하는 굿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한국이 이 일에 총대를 멨다. 순진하거나 호들갑이거나 둘 중 하나다. 기왕 할 일이라면 여기서 돈도 벌자는 계산이겠지만 계산속이 얄팍하다. 계산이 안 되다 보니 발광다이오드(LED)며 2차전지 등 기업들이 자기 계산하에 목숨 걸고 매달려 온 기왕의 산업분야까지 모두 우겨 넣어 부풀리고 있다.

문제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쓸 전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환경은 더 오염되고 바이오 연료 또한 턱없이 고비용이라면,그리고 태양이나 바람과 수소가 경제적이려면 어림잡아 국민소득 5만달러는 돼야 한다는 주장을 상기한다면,녹색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인다는 냉엄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린 성장의 선도국을 자처했던 스페인도 그런 모순에 봉착해 있는 모양이다. 당연하다. 스페인은 녹색 전력 1㎿를 생산하는 데 다른 일자리 5.28개를 날려보냈다. 태양전지는 8.99개를,풍력 4.27개,소규모 수력은 5개의 일자리를 파괴했다는 정도다. 1개의 그린 잡을 만드는 데 평균 2.2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보고다.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이 천연자원만은 아니다. 정부 재원이야말로 본질적으로,그리고 언제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세금을 걷어 효율성이 낮은 곳으로 투입하면 당연히 일자리는 줄어든다. 보조금 따먹는 일자리는 생겨나겠지만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는 소리 없이 일자리가 사라진다. 우리나라 종교 인구를 다 합치면 1억명이 나온다는 계산법에 정부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지 않나. 엄격해진 녹색 기준을 맞추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는 누가 계산하는지 궁금하다. 경제 성장이 멈추면 녹색에서 오히려 멀어질 뿐 녹색을 통해 성장을 늘릴 수는 없다. 가난한 나라의 환경이 보호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이나 영국의 그린뉴딜도 운명은 같을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계산을 거꾸로 하는 버릇이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