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의회를 상대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을 강하게 압박했다. FTA와 관련해선 지금까지 한 발언 중 가장 강한 톤이었다. 2007년 양국 간 FTA가 체결됐으나 3년이 지나도록 비준을 위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미국의 더 적극적인 태도를 촉구한 것이다.

◆"미,보호주의 가면 리더십 상실"

이 대통령은 한 · 미 FTA를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해 줄 것을 미국에 주문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 미 FTA를 실기할 경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한 · 미 FTA는 중국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한국은 일본과 미국을 합쳐도 중국과의 통상 규모에 못미친다. 앞으로도 점점 더 격차는 커질 것으로 보는데 미국이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 미 FTA 비준이 늦어지면 미국은 한국 시장의 상당부분을 중국에 뺏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제1의 투자국이다. 통상도 1위이고 한국은 중국과 좋은 경제협력 관계를 지속하려 한다. 상호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 아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고 한 것은 미국을 의식한 직설화법이다. 특히 "한 · 중 FTA를 할지 여부는 우리 측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중국과 먼저 FTA를 체결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부분적 문제에 집착하면 미국 국익 전체를 놓치게 된다며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재차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한 · 미 FTA는 오바마 행정부가 의지를 갖고 하는데 달려있다,오바마 행정부의 능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로 갈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보호무역주의로 해서 얻는 것은 잠깐이고 결국은 자유무역주의로의 글로벌 리더십이 미국에 영원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새 전환기 맞아"

이 대통령은 북한 화폐개혁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화폐개혁 실패로 인해 새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엔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따라오라는 체제였는데 화폐개혁 실패와 주민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게 요지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화폐개혁 실패 책임자를 처벌한 것은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노력한 결과이며 과거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지도부도 주민들의 궁핍과 불만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랜드 바겐(포괄적 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워싱턴=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