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가 초기 상용화 단계로 접어든 일본에서 업체 간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지난 1일부터 일본 자동차업체로는 처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기차 '아이미브(i-MiEV)'의 판매를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닛산자동차는 오는 12월 전기차 '리프(LEAF)'를 일반인에게 판매한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두 업체가 전기차의 가격 책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며 경쟁구도를 보이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두 업체간의 첨예한 가격 경쟁이 벌어진 것은 지난달 30일. 닛산은 이날 오전 '리프'의 판매가격을 376만엔(약 4490만원)으로 책정했다. 일본 정부가 소비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을 적용한 가격은 299만엔(약 3570만원)이다.

같은 날 저녁, 미쓰비시는 '아이미브'의 일반인 대상 판매가격을 기존 법인판매용보다 62만엔 인하한 398만엔(약 4750만원)으로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전기차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으면 284만엔(약 3390만원)으로, 닛산 '리프'보다 15만엔 저렴하다. 원래 가격은 더 비싸지만 경차 보조금이 추가로 지급되는 덕분이다.

이 같은 미쓰비시의 '시간차 공격'과 관련, 니혼게이자이는 미쓰비시가 가격발표 당일 임시 이사회를 갖고 오전 중 닛산의 발표를 주목해 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원래 아이미브의 가격을 보조금 포함 290만엔대로 상정했다. 그러나 닛산이 리프 가격을 300만엔 이하로 책정하는 예상 밖의 강수를 두자 갑작스레 가격을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프는 5인승 차량인 반면, 아이미브가 경차인 점을 고려해 15만엔 정도의 가격차이가 있어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차량에 탑재하는 배터리다. 미쓰비시와 닛산은 모두 대용량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아이미브에 탑재한 배터리 가격은 제어시스템을 포함해 약 240만엔으로 추산된다. 이를 두고 미쓰비시가 현행 가격대로 아이미브를 판매할 경우 적잖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면 닛산 리프의 경우 업계의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표를 달았다는 평가다. 리프에 탑재되는 배터리 가격은 미쓰비시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향후 일본 외에도 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에서 배터리 양산체제를 갖춘 것이 강점으로 지목된다. 닛산의 배터리 글로벌 생산규모는 오는 2012년 5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업체간의 가격 경쟁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다. 일본 소비자가 닛산 리프를 구입할 경우,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299만엔이지만 카나가와현 거주자는 별도 보조금 35만엔, 요코하마시 거주자는 15만엔의 추가 보조금을 받는다. 신차가격이 250만엔 안팎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다. 이 같은 정황을 두고 일본에서는 '2010년은 전기차 양산화의 원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