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안에 있는 광주금형트라이아웃(TO)센터.압력 하중이 1200t에 달하는 대형 프레스가 찍어낸 자동차 부품을 꼼꼼히 살피던 빅토르 바스케스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멕시코의 자동차 차체부품 제조업체인 메탈자의 품질관리자로 금형틀(금속으로 만든 거푸집)을 구하러 광주를 찾은 그는 "액설런트"를 연발하며 즉석에서 대당 3억원 하는 금형틀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내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에 자동차 모듈(부품박스)을 공급하는 메탈자가 구입한 이 금형틀은 광주의 아이포스텍이 생산한 제품이다.

◆트라이아웃센터 해외 바이어 북적

'빛고을' 광주가 국제 금형산업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광주금형트라이아웃센터는 요즘 '메이드 인 광주' 제품을 구입하려는 외국 바이어들로 연일 북적거린다. 이날 하루만 해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세탁기 양산 업체인 마브에 광산하이텍이 1억원짜리 금형을 공급하기로 하는 등 모두 5건의 계약이 이뤄졌다.

세계 최대 규모로 커진 광주 금형클러스터(집적화단지) 내 266개 업체들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모두 8001억원에 달한다. 2007년 350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직원 수가 대부분 5~20명에 불과한 소기업들이 달성한 실적이어서 더욱 눈에 띈다. 금형산업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에서도 지난 2월 말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의원이 "광주 금형산업의 질주가 일본 금형산업의 위기를 불러올지 모른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부분 업체들이 최근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밀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초정밀 사출금형 업체인 상오정밀의 박상오 사장은 "지난해 말 22억원을 들여 공장을 증설했는데도 납품 시기를 맞추기 힘들 정도"라며 "인근의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여서 회사를 찾아온 해외 바이어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비 공동 사용…품질 높여

이처럼 광주 금형산업이 급성장한 것은 2008년 평동산업단지에 금형TO센터와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부터다. 금형TO센터에 업체들이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프레스와 사출성형기,정밀측정기 등 30여종의 장비를 갖춰 단지 내 중소업체들의 제품을 납품 전에 시험생산했다. 덕분에 금형의 사전 품질검사와 제품 보증이 가능해지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까지 덩달아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KAIST 공학박사 출신의 김기풍 센터장(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광주 금형산업의 성공은 해당 업체들의 필요와 지방자치단체,정부의 지원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형업체들이 모여 만든 사단법인 광주금형산업진흥회도 해외 시장 개척에 발벗고 나섰다. 진흥회는 2007년 일본 독일 말레이시아 터키 등 5개국에 자체 판매 거점을 구축한 데 이어 지난 1월 인도에도 사무소를 개설했다. 앞으로 미국 러시아 유럽까지 영업망을 넓힐 계획이다. 2008년 말에는 일본의 대표적 초정밀 금형업체인 야와타금속이 TO센터 인근에 1만여㎡ 규모의 공장을 설립해 가동 중이다. 최병철 진흥회 사무국장은 "대구 · 군산 등 지자체는 물론 일본 독일 터키 등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방문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제 금형산업 기지로 육성"

광주시와 전라남 · 북도 역시 광주 금형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호남지역을 국제 금형 공급기지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광역경제권(5+2) 전략에 포함된 '글로벌 그린몰드 메카' 구축 사업이다. 이를 통해 금형산업을 조선 자동차 광산업 등 지역별 특화 산업과 연계 육성하고 공동 브랜드 활성화,해외 마케팅 공동망 구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성봉 광주금형산업진흥회장(한국정밀 대표)은 "일본 등 금형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여전하지만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될 경우 국내 금형산업은 조만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