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소송할 것인가. 아니면 조정에 합의해 완전 패소의 리스크를 줄일 것인가. 민사 사건 당사자들은 늘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승소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끝까지 가는 게 좋지만 조금이라도 과실부분이 드러난다면 자칫 법원이 제시하는 조정합의액보다 낮은 금액만 배상받을 수도 있다. 실제 소송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침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에 각각 설치한 법원조정센터가 13일로 설립 1주년을 맞는다. 조정은 '솔로몬의 지혜'라는 점을 법원은 강조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서울조정센터에 접수된 조정신청 1633건 중 양측이 합의한 조정비율은 50.2%에 달했다. 대표적인 조정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손해배상 대신 납품계약으로

A사는 B사 행사의 사은품으로 납품하기 위해 '여행용 다이어리' 상품을 기획했다. A사 사장은 견본제품을 지참한 채 B사를 찾아가 제품을 설명한 뒤 납품단가를 제기했다. 그러나 B사 측이 단가를 55% 정도로 낮출 것을 요구하자 A사 사장은 일단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뒤 견본제품을 두고 돌아왔다. A사는 며칠 후 B사로부터 "납품단가가 높아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2개월 후 A사 사장은 자사가 기획한 상품과 거의 같은 제품이 B사 행사의 사은품으로 배포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이에 A사는 "B사가 부정경쟁 행위로 영업상 이익을 침해했다"며 다이어리 1만권의 납품가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신청을 했다. B사는 이에 "적정한 단가를 부르는 하청업체와 납품계약을 체결하면서 A사의 견본제품을 줬지만 하청업체가 모방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고 A사 제품의 독창성도 인정할 수 없다"며 버텼다.

조정센터는 B사에 "신의칙과 상도의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니 금전적 배상 이외의 해결방법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양사는 협의 끝에 A사가 B사에 여행용 다이어리 1만권을 권당 3000원에 납품키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조정안에 합의했다.

◆보험사에 안 알린 병이 났다면?


C씨는 질병보험에 가입하면서 6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결절이 확인된 것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다. C씨는 보험에 가입한 지 8개월 만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보험사는 갑상선 결절을 고지하지 않은 점을 들어 보험계약을 해지했다.

"갑상선 결절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며 C씨가 반발하자 보험사는 서울고등법원 조정센터에 조정을 의뢰했다.

C씨는 조정과정에서 갑상선암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다면 다른 질병에 대비해 보험계약이라도 유지되기를 바랐지만 보험사는 거부했다.

조정센터는 "갑상선결절이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일반인이 모를 수 있다"며 보험사의 양보를 권했다. 보험사와 A씨는 결국 갑상선암을 제외하고 보험계약을 유지하는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조정센터 관계자는 "소송이었다면 고지 의무위반 여부만 쟁점이 돼 고의 및 과실 여부를 둘러싸고 분명 3심까지 긴 쟁송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