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일본인 친절은 '매뉴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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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정말 친절한가' 지난주 1박2일 일정으로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에 출장 취재를 다녀오면서 이런 엉뚱한 의문을 갖게 됐다. 계기는 이렇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일행과 함께 저녁식사를 예약해둔 식당에 가 보니 테이블에 1인분씩의 식사가 옆 자리를 한 자리씩 비워둔 채 놓여 있었다. 직원에게 일행과 모여 식사할 수 있도록 상차림을 옆사람과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대답은 음식 그릇이 많은 메뉴라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손님의 편의보다 테이블 세팅 규정만 따지는 직원을 보고 황당했다.
'일본인은 친절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게 일본의 경쟁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일본에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한국에서 항공택배로 보낸 서류를 급히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도착 예정일이 공휴일이어서 저녁 때까지 오지 않았다.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휴일 심야에도 서비스해 주는 편의점 택배로 재발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추가 비용은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택배회사 직원은 그런 서비스는 규정에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잘랐다. 정 급하다면 규정대로 본인이 물류창고까지 찾아와 받아 가란다. 입으로는 "죄송합니다"를 십수번 반복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결국 왕복 2시간 걸려 직접 서류를 찾아와야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 몇 가지로 '일본인은 친절하지 않다'고 일반화할 순 없다. 그러나 서비스 현장의 사람들이 융통성이 없는 건 분명하다. 앞의 두 사례도 규정만 따진 게 핵심 원인이다. 식당과 상점,은행에서 그런 꽉 막힌 서비스에 답답했던 기억은 수없이 많다.
이런 지적엔 일본인들도 수긍한다. 일본인은 왜 융통성이 없는 걸까. 역설적으로 규정을 너무 잘 지키기 때문이다. 일본은 매뉴얼의 나라다. 서비스 업종에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정해져 있다. 손님이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응대하라는 식이다. 일본 기업은 직원을 채용하면 이런 매뉴얼부터 철저히 가르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1만엔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은 거스름돈 지폐를 손님 방향으로 보여주며 '한장 두장 석장…'식으로 소리를 내 센다. 처음엔 '편의점 점원도 이렇게 친절하구나'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매뉴얼의 힘'이란 걸 금세 눈치 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상당수 중국인과 한국인 유학생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라고 '친절'이란 DNA를 타고 난 건 아닌 것 같다. '친절하라'고 적힌 매뉴얼을 예외 없이 정확히 따랐을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의 공항,상점,식당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친절도 매뉴얼에 의한 조건반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친절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문제는 매뉴얼에 없는 걸 고객이 요구하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매뉴얼에 없는 요구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게 일본 서비스업의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나 상대방 입장에선 가끔 친절하지 않고,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 기업,우리 식당,우리 상점은 과연 고객에게 정말 친절한지 되돌아볼 일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일본인은 친절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게 일본의 경쟁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일본에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한국에서 항공택배로 보낸 서류를 급히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도착 예정일이 공휴일이어서 저녁 때까지 오지 않았다.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휴일 심야에도 서비스해 주는 편의점 택배로 재발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추가 비용은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택배회사 직원은 그런 서비스는 규정에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잘랐다. 정 급하다면 규정대로 본인이 물류창고까지 찾아와 받아 가란다. 입으로는 "죄송합니다"를 십수번 반복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결국 왕복 2시간 걸려 직접 서류를 찾아와야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 몇 가지로 '일본인은 친절하지 않다'고 일반화할 순 없다. 그러나 서비스 현장의 사람들이 융통성이 없는 건 분명하다. 앞의 두 사례도 규정만 따진 게 핵심 원인이다. 식당과 상점,은행에서 그런 꽉 막힌 서비스에 답답했던 기억은 수없이 많다.
이런 지적엔 일본인들도 수긍한다. 일본인은 왜 융통성이 없는 걸까. 역설적으로 규정을 너무 잘 지키기 때문이다. 일본은 매뉴얼의 나라다. 서비스 업종에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정해져 있다. 손님이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응대하라는 식이다. 일본 기업은 직원을 채용하면 이런 매뉴얼부터 철저히 가르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1만엔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은 거스름돈 지폐를 손님 방향으로 보여주며 '한장 두장 석장…'식으로 소리를 내 센다. 처음엔 '편의점 점원도 이렇게 친절하구나'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매뉴얼의 힘'이란 걸 금세 눈치 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상당수 중국인과 한국인 유학생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라고 '친절'이란 DNA를 타고 난 건 아닌 것 같다. '친절하라'고 적힌 매뉴얼을 예외 없이 정확히 따랐을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의 공항,상점,식당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친절도 매뉴얼에 의한 조건반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친절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문제는 매뉴얼에 없는 걸 고객이 요구하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매뉴얼에 없는 요구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게 일본 서비스업의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나 상대방 입장에선 가끔 친절하지 않고,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 기업,우리 식당,우리 상점은 과연 고객에게 정말 친절한지 되돌아볼 일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