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국제중재는 서류싸움…퇴직자 이메일까지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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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ㆍ비용 절약 강점 있지만 번복 불가
평상시 글로벌 스탠다드 갖춰야
평상시 글로벌 스탠다드 갖춰야
기업들의 해외 진출 및 국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중재가 분쟁의 주요 해결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등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판정이 나오면 그 집행을 거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일단 중재에 들어가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중재 전문 변호사들은 평소 중재에 대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득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 우왕좌왕하다가 중재에서 불리한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평소부터 중재에 대처하는 '중재 관리 모드'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소송에 비해 단기간에 끝나는 중재의 특성상 추후 반박을 펼치기 힘든 만큼 초반에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 문서는 법으로 지켜라
중재에 있어 꼭 이해해야 할 개념 중 하나가 '디스커버리'다. 디스커버리란 동일한 범위의 서류를 공유하며 절차를 진행하는,일종의 증거개시 절차다. 이때 기업 기밀을 담은 문서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우리 기업들이 경악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돌입하기 전 제출 서류를 준비하던 모 정보기술(IT)기업은 '문제가 될 법한 문서는 파기하거나 숨기면 되지 않을까'란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해당 문서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제출을 요구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접었다. 대신 "문서들 중 일부는 기술적 기밀이 담겨 있으니 제출은 하되 상대방에게까지 공개할 수 없다"고 중재 초기 단계에서 설명해 기밀 공개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한 결과를 남긴 문서는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외 유수의 기업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때 변호사와 동석한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라
한국적 관습에 따라 겸양적 표현을 문서에 남기면 곤란하다. 우리 기업들은 직접적으로 본론을 꺼내기 전 '귀사의 일익번창을 기원합니다(We wish the prosperity of your company)' 등의 상투적 어구로 운을 떼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겸양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별 생각 없이 '이런 점은 인정합니다만…'이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중재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
외국인들은 이런 표현을 '당신 회사가 이런 잘못을 저지르긴 했다고 시인하는 거 아니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김앤장의 윤병철 변호사는 "겸양적 표현을 걸고 넘어지며 '당신들이 책임이 없다면 왜 이런 표현을 썼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며 "이는 자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첫째도 서류 관리,둘째도 서류 관리
'중재란 서류더미들이 벌이는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서류는 중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평소에 서류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원본 훼손이다. 원본을 결재서류로 만들어 버려 외부서류(원본)와 내부서류(결재서류)가 뒤섞이게 하는 실수가 잦다. 중재시 외부서류는 제출 대상이지만 내부서류는 상황에 따라 공개 · 비공개 여부가 정해진다. 원본을 내부서류처럼 만들어 버리면 제출 대상이 돼 내부 논의 과정에서 오간 내밀한 내용까지 고스란히 공개될 위험에 노출된다. 심지어 주고받은 서류 원본에 별 생각없이 낙서를 남겨 중재인에게 해당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어이없는 일도 가끔 발생한다.
이메일 관리도 취약하다. 상대방이 보낸 이메일을 보관하지 않고 삭제해 버리거나,여러 직원들이 각각 메일을 발송한 다음 이 과정을 아무도 총괄하지 않는 일도 종종 있다. 퇴직자가 보낸 이메일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자료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아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례도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이 미흡하고,내부서류와 외부서류의 구분에도 서투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문서의 수정본을 모두 남겨뒀다가 '최종본을 냈으니 수정본은 안 내도 되겠지'란 생각에 제출을 누락해 중재인에게 '찍히는' 경우"라고 귀띔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국제중재=법원의 판결이 아닌 중재인의 결정에 따라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계약의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장소 선택 및 중재판정부 구성을 하게 된다. 상소가 가능한 소송과 달리 중재는 중재인의 최종 판정이 내려지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불복할 수 없다. 중재를 제기하려면 해당 국가에 있는 국제중재기관에 중재신청서를 내면 된다. 대표적인 국제 중재기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상공회의소(ICC) 국제중재재판소,영국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미국 국제분쟁해결센터(ICDR),우리나라의 대한상사중재원 등이다.
중재 전문 변호사들은 평소 중재에 대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득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 우왕좌왕하다가 중재에서 불리한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평소부터 중재에 대처하는 '중재 관리 모드'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소송에 비해 단기간에 끝나는 중재의 특성상 추후 반박을 펼치기 힘든 만큼 초반에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 문서는 법으로 지켜라
중재에 있어 꼭 이해해야 할 개념 중 하나가 '디스커버리'다. 디스커버리란 동일한 범위의 서류를 공유하며 절차를 진행하는,일종의 증거개시 절차다. 이때 기업 기밀을 담은 문서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우리 기업들이 경악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돌입하기 전 제출 서류를 준비하던 모 정보기술(IT)기업은 '문제가 될 법한 문서는 파기하거나 숨기면 되지 않을까'란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해당 문서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제출을 요구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접었다. 대신 "문서들 중 일부는 기술적 기밀이 담겨 있으니 제출은 하되 상대방에게까지 공개할 수 없다"고 중재 초기 단계에서 설명해 기밀 공개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한 결과를 남긴 문서는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외 유수의 기업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때 변호사와 동석한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라
한국적 관습에 따라 겸양적 표현을 문서에 남기면 곤란하다. 우리 기업들은 직접적으로 본론을 꺼내기 전 '귀사의 일익번창을 기원합니다(We wish the prosperity of your company)' 등의 상투적 어구로 운을 떼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겸양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별 생각 없이 '이런 점은 인정합니다만…'이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중재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
외국인들은 이런 표현을 '당신 회사가 이런 잘못을 저지르긴 했다고 시인하는 거 아니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김앤장의 윤병철 변호사는 "겸양적 표현을 걸고 넘어지며 '당신들이 책임이 없다면 왜 이런 표현을 썼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며 "이는 자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첫째도 서류 관리,둘째도 서류 관리
'중재란 서류더미들이 벌이는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서류는 중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평소에 서류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원본 훼손이다. 원본을 결재서류로 만들어 버려 외부서류(원본)와 내부서류(결재서류)가 뒤섞이게 하는 실수가 잦다. 중재시 외부서류는 제출 대상이지만 내부서류는 상황에 따라 공개 · 비공개 여부가 정해진다. 원본을 내부서류처럼 만들어 버리면 제출 대상이 돼 내부 논의 과정에서 오간 내밀한 내용까지 고스란히 공개될 위험에 노출된다. 심지어 주고받은 서류 원본에 별 생각없이 낙서를 남겨 중재인에게 해당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어이없는 일도 가끔 발생한다.
이메일 관리도 취약하다. 상대방이 보낸 이메일을 보관하지 않고 삭제해 버리거나,여러 직원들이 각각 메일을 발송한 다음 이 과정을 아무도 총괄하지 않는 일도 종종 있다. 퇴직자가 보낸 이메일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자료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아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례도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이 미흡하고,내부서류와 외부서류의 구분에도 서투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문서의 수정본을 모두 남겨뒀다가 '최종본을 냈으니 수정본은 안 내도 되겠지'란 생각에 제출을 누락해 중재인에게 '찍히는' 경우"라고 귀띔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국제중재=법원의 판결이 아닌 중재인의 결정에 따라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계약의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장소 선택 및 중재판정부 구성을 하게 된다. 상소가 가능한 소송과 달리 중재는 중재인의 최종 판정이 내려지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불복할 수 없다. 중재를 제기하려면 해당 국가에 있는 국제중재기관에 중재신청서를 내면 된다. 대표적인 국제 중재기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상공회의소(ICC) 국제중재재판소,영국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미국 국제분쟁해결센터(ICDR),우리나라의 대한상사중재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