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자산운용에 처음 출근해 일주일간 체중이 3kg나 빠졌습니다.”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주식투자부문 대표(44, 전무이사)는 피델리티자산운용에 합류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김 전무가 첫 출근한 2004년 5월2일은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이 분기마다 한 번씩 여는 ‘인터내셔널 리뷰 위크’(international review week)였다.

‘인터내셔널 리뷰 위크’에서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피델리티의 연구원과 펀드매니저들이 모두 모여 국가별, 산업별 증시에 대한 난상토론이 이뤄진다. 새로운 환경에 어색한 김 전무는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이 기간을 통해 피델리티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 미디어 <한경닷컴>은 지난 9일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를 만나 그의 펀드운용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델리티 시스템'으로 시장을 내려다보다”

2010년 3월말 기준으로 총 8개, 3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형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김태우 전무는 피델리티의 운용 지원시스템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의 종목으로 시장을 웃도는 수익을 추구하다보니 종목선정이 펀드운용의 핵심이다. 종목선정은 사전적 기업분석과 기업탐방을 거쳐 이뤄진다. 피델리티는 사전 기업분석 단계에서부터 투자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완벽한 지원이 이뤄진다는 것이 김 전무의 평가다.

“최종 종목선정을 위한 기업탐방을 가기 일주일 전, ‘인포팩(Information Pac)'이 제 책상 위에 올라옵니다.”

‘인포팩’이란 피델리티 내부의 리서치자료와 증권사의 분석리포트, 재무제표 자료 등이 총괄된 기업분석자료다. 이는 ‘코디네이터’라 불리는 직원들이 준비해주며 적게는 30쪽에서 많게는 60~70쪽 분량이다. 여기에 해당 기업 탐방시 확인해야할 40~50개의 질문목록을 피델리티 연구원들이 사전에 준비해 첨부한다.

“인포팩은 서울 사무소에만 적용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피델리티 안에서 표준화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삼성전자를 홍콩 컨퍼런스에서 만났는데, 여기에 참석한 홍콩 보스턴 런던 싱가포르 등에서 온 40여명의 피델리티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내용의 인포팩을 들고 있었습니다.”

전세계에 있는 피델리티 직원들의 삼성전자 연구자료가 인포팩에 담겨 있는 것이다. 김 전무는 인포팩을 바탕으로 그가 탐방시마다 기록했던 탐방노트와 비교해 질문서를 보완한다.

피델리티는 인포팩을 비롯해 수익률 및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지원업무에 연간 2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피델리티 전체가 IBM에 투자하는 금액보다 많은 것이다.

피델리티 입사 이후 6년간 연평균 250회 정도의 기업미팅을 진행한 기업탐방광(狂)인 김태우 전무와 피델리티 운용지원 시스템과의 만남은 고스란히 수익률로 그 효과를 나타냈다.

◆"코리아주식형펀드 누적수익률 123%"

김태우 전무가 피델리티에서 처음 운용을 맡은 ‘피델리티코리아주식형펀드’는 한국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4600억원 규모의 역내 펀드다. 이 펀드는 2005년 3월3일 설정일 이후 매년 코스피지수의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설정일 이후 지난달 말까지 ‘피델리티코리아주식형펀드’의 누적수익률은 123.07%고, 코스피지수보다는 55.04%포인트의 초과 수익률을 달성했다.



‘피델리티코리아주식형펀드’의 실적은 지속적인 보유종목 점검이라는 김 전무의 운용원칙 덕분이다. 그는 1994년 펀드운용을 시작한 이래 편입종목을 40개 내외로 가져가고 있다.

“적어도 분기에 1번은 보유종목에 대해 미팅을 가지고 있습니다.미팅을 통해 보유종목의 투자이유(Investment Thesis)가 유효한지 등을 판단해 보유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죠. 70~80개에 달하는 종목을 보유해서는 이러한 의사결정을 하기가 힘듭니다. 40개 정도가 지속적인 사후관리와 분석에 적합한 숫자입니다.”

김 전무는 종목선정 기준으로 경영자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LG생활건강은 이같은 원칙 하에 발굴한 기업이다. 그는 LG생활건강을 2005년 3월 펀드를 출시한 이후 처음 4만5000원 수준에서 매입한 이후 지금까지 5년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이달 12일 종가기준으로 29만6500원으로 558%나 올랐다. 김 전무는 LG생활건강의 주가가 20만원에 달해 초기 매수가보다 5배 정도 증가했을 때에도, 이 종목을 추가로 사들였다. 차석용 최고경영자(CEO) 대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2005년 이후 매분기 LG생활건강 사람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으며, 1년에 한번 꼴은 차 대표를 만나 경영현황에 대한 설명 등을 듣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5년간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김 전무는 LG생활건강이 1990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생활용품 부분에서의 높은 지명도나 시장점유율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시장에서의 고전과 관리·유통망의 비체계화로 매우 낮은 수준의 이익률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5년 외부 공채를 통해 차 대표를 맞으면서 화장품 부분이 눈에 띠게 성장했고, 잇달아 음료회사인 한국코카콜라보틀링과 화장품업체 더페이스샵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해 기업의 ‘때깔’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차 대표는 매년 초 올해는 1% 혹은 2%의 마진을 개선시키겠다고 공언했고, 매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켰습니다. 그가 시장에 보여준 신뢰 때문에 보통 기업의 인수·합병(M&A)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데, 차 대표가 한다고 하면 대부분 걱정을 안 합니다.”

김 전무는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역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며 "LG생활과학과 LG화학은 포트폴리오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

김 전무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펀드환매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007년 11월1일 전세계 주식시장이 고점을 찍었을 때 들어왔던 펀드자금들이 원금을 회복하면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지, 한국 증시의 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올해 한국증시는 다른 아시아증시에 비해 좋은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한국증시가 아시아시장의 다른 나라보다 여전히 저평가돼 있고, 성장률 전망도 높기 때문입니다."

2010년 3월26일 기준 한국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을 9.7배인데 비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시장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은 14.1배라 투자 매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은 한국이 올해 37.7%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아시아 평균은 26.2%라고 전했다.

“기업이익이 40% 가까이 성장하는데, 한 자릿수 PER로 거래된다는 것을 한국시장이 그만큼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많이 사들이고 있죠.”

외국인은 지난 1분기 약 8조3000억원어치의 한국증시 상장종목들을 순매수했다. 3월 한달에만도 5조4000억원을 사들였으며, 이달 들어서도 1조3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하고 있다.

김 전무는 특히 IT(정보기술)와 자동차 업종은 세계시장 점유율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보다 양호한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15년 반째 현역 펀드매니저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김태우 전무는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에는 농업적 근면성, 창의적 의사결정, 업무능력 등 많은 부분들이 필요하나, 그 결과인 펀드운용의 성과가 모든 것을 앞선다”며 “그 결과가 실망스러울 때는 정말 괴롭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토로했다.

“포기하거나 펀드매니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든 시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면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을 흘립니다. 다섯 번 정도 그런 경험을 했는데, 세 번은 힘들어서 두 번은 감사해서였습니다.”

◆“요트 타고 싶어 펀드매니저 되다”

김태우 전무는 군 제대 후, 복학할 무렵인 1990년에 펀드매니저를 목표로 삼았다. 영화 한편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찰리 쉰이 주연한 ‘월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보고 펀드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부 정보로 기업을 인수해서 불법적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일순간에 몰락한다는 다소 교훈적인 내용이었는데,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월스트리트의 근무 장면과 성공해서 요트를 타는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요트를 살 수 있는 직업이 펀드매니저일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 3,4학년 동안 주식과 관련된 과목을 모조리 들었다. 졸업당시 3대투신사의 신입사원 공채가 없어 1993년 주식 운용의 기회가 있는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1994년부터 하나은행에서 주식과 채권을 운용하게 됐고, 이후 2000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국내 대표 주식형펀드인 ‘미래에셋 디스커버리펀드’를 출시, 스타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얻었다.

“잘 나가던 디스커버리를 놓고 외국계로의 이직을 결심한 것은 계속 현역 펀드매니저로 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운용사에서 전무, 사장이 되면 결국 액티브 매니저가 아니라 관리업무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피델리티에서는 피터 린치도, 올해 복귀 예정인 앤서니 볼턴도 여전히 현역 펀드매니저입니다. 저를 신뢰하는 고객이 있는 한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펀드매니저를 하고 싶습니다.”



글=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
사진=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