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과 자동차 등 수출주의 상승 탄력이 둔화되고 있다. 외국인은 원화 가치가 달러당 1100원 선에 근접하자 수출주에 대한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를 늦출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어 수출주들은 이중고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주도주 교체를 논하기에는 아직 내수주의 상승 모멘텀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전자 사흘 새 4.2% 하락

삼성전자는 13일 0.24% 떨어진 82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크레디트스위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창구를 통해 이날 거래량(40만9114주)의 절반에 가까운 19만3194주의 매물이 쏟아졌다.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 잇따르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사흘 새 4.2%(3만5000원) 밀려났다.

포스코 역시 외국계 증권사들이 매도 상위에 랭크된 가운데 이날 53만8000원으로 1.28% 하락 마감했다. 현대차는 개인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등에 성공했지만 오름폭이 1.69%에 그쳐 9.5%에 달하는 지난 닷새간의 하락폭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3월 이후 수출주 중심으로 대거 매수했던 일부 외국인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환율이 과거 경험상 저점에 도달하면서 헤지펀드 등 환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외국인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환율 1100원 이하 땐 '팔자'

해외 자금 유입이 본격화한 2000년 이후 외국인은 원 · 달러 환율이 1100~1200원 사이일 때 가장 적극적으로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반면 환율이 11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어김없이 '팔자'로 돌아섰다.

황금단 삼성증권 연구원은 "1월 초에도 1160원이던 원 · 달러 환율이 1120원 선 밑으로 내려서자 외국인이 매도 우위를 보였다"며 "환율이 단기간 크게 빠지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에 다가서자 주도주에 대한 차익 실현 욕구가 커진 것"으로 풀이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 8일까지 주가는 5.5% 올랐지만 환율 하락폭을 감안한 실제 수익률은 6.3%로,외국인은 0.8%포인트의 추가 차익을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대형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는 "대부분 수출기업들이 올 연말 환율을 1100원으로 잡고 있어 원화가 이보다 더 강세를 보일 경우 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주형 동양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수요 둔화 가능성이 수출주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 강세의 대표적 수혜주인 철강주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아직 제품값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주가가 힘을 못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주도주 부진 속에 사흘 연속 하락하며 장중 1700선을 밑돌기도 했지만 막판 상승 반전해 0.29포인트(0.02%) 오른 1710.59로 마감했다.

◆은행주로 순환매 주목

중국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커지는 등 원 · 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분석팀장은 "다우지수가 11,000선을 넘어서면서 고점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고 있어 당분간 수출주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주도주가 숨을 고르는 사이 은행주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모비스 등 IT · 자동차에 집중됐던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는 환율이 1120원 아래로 떨어진 지난 9일 이후 우리금융 신한지주 등 은행주로 옮겨가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 박스권 매매를 하는 단기 외국인 투자자들이 은행주를 많이 샀지만 지금은 뮤추얼펀드 등 장기 투자자들이 은행주의 펀더멘털 개선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 연구원은 "이익 모멘텀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직 내수주로 증시 주도권이 옮겨갈 시점은 아니다"며 "원화가 이미 예상되는 위안화 절상폭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어 환율이 안정되면 수출주의 주도력이 살아날 것"으로 내다봤다.

강지연/김유미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