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A씨는 요즘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한 코스닥 상장사의 재무제표를 감사해 '의견거절'을 낸 뒤부터다. 이 회사에 투자했다가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은 소액주주가 전화를 걸어와 "당신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알고 있다"며 재감사를 통해 감사의견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A씨는"소액주주의 답답함도 이해는 가지만 아이 학교를 거론했을 때는 섬뜩했다"며 "회계사로서 지나치게 큰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기쁘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올해부터 상장사에 대한 회계감사가 강화되면서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들의 책임이 커졌다.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내느냐 비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으로 발표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상장폐지 여부가 사실상 결정나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주주들은 1차적인 분노를 감사의견을 낸 회계법인에 돌린다. 13일 네오세미테크의 소액주주들이 감사의견을 낸 대주회계법인을 항의 방문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의견 거절을 내면 상장폐지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봐줄 수도 없다 보니 감사에 더욱 만전을 기하게 된다"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회사의 재무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불만을 우리 쪽에 돌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역시 물질적인 손해를 입게 된다. 의견거절이 된 해당 기업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수수료는 보통 대상기업 자산의 0.1% 정도다. 자산이 100억원인 법인을 심사할 경우 1000만원가량을 받는다. 중소 회계법인 대표는 "회계법인 사이에서 코스닥 기업들의 회계감사를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며 "나중에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만큼 리스크 감수 비용을 포함해 회계감사 수수료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감사의견을 내는 것은 회계법인이지만 심사를 통해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거래소"라며 "의견거절이 되더라도 6개월간의 유예기간 중 거절 사유가 해소되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경목/김동윤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