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89) 경한‥주방가구→급식시설→식품 멸균기…시장 내다보며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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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제대후 주방가구점 열어 80년대 대구 대형식당 턴키시공
초등교 급식시러도 수주 급성장
2006년 공기스팀 멸균기 호평…식품제조 설비 분야로 영역확대
초등교 급식시러도 수주 급성장
2006년 공기스팀 멸균기 호평…식품제조 설비 분야로 영역확대
15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의 경산산업단지 내 주식회사 경한(회장 한영우 · 64).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공장이 불빛으로 환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직원들이 빠져나가 어둠에 잠긴 인근 공장과 달랐다. 이곳 직원들은 절단 · 용접 · 조립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풀무원 CJ제일제당 아워홈 등 식품회사로부터 주문이 밀려드는 식품 멸균기 '스테리-에이스'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다. 일감이 넘쳐 주말에도 잔업을 할 정도라고 한다.
스테리-에이스는 즉석식품인 레토르토 식품을 멸균하는 기기로 식품에 따라 121도에서 15~30분 가열하면 균이 박멸돼 1년간 유통할 수 있게 된다. 연간 50대 정도 팔리는 국내 멸균기 시장에서 경한이 수주하는 물량은 35대 정도.가격은 용량에 따라 8000만~2억원 선이다. 한영우 회장은 "공기스팀으로 멸균을 하기 때문에 외국제품처럼 용수가 아예 필요하지 않으며 설치공간,소비전력,압축기용량 등도 외산의 25~5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경한의 출발은 한 회장이 육군 중위로 제대하던 1972년 10월 퇴직금을 털어 서울 응암동에 100㎡ 규모의 주방가구점을 내면서다. 당시 독산동 신림동 개발현장을 쫓아다니며 신축가옥에 주방가구를 설치해주는 일로 돈을 벌었다.
제조업 사장의 꿈을 키워오던 한 회장은 1975년 대구로 내려와 공장을 짓고 싱크대나 작업대에 사용하는 스테인리스판을 만들었다. 생산된 제품은 찬장 문짝을 만드는 목공소나 싱크대를 만드는 주방가구점에 내다팔았다. 이후 업소용 식당을 대상으로 밥솥 취사기,식기세척기 등 대형 주방기구를 공급하기 시작한 1982년부터 기업 규모를 갖추게 된다. 보통 2000~5000명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대형식당을 턴키로 시공했다. 한일합섬 국제상사 경남모직 등 직원이 1000명 이상인 대구지역의 웬만한 회사의 식당은 대부분 경한이 설치했다고 한다.
한 회장은 "경쟁업체들과 달리 압력용기 및 가스기구 제조허가를 받았을 정도로 기술력이 있었으며 꼼수를 부리지 않고 철저히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초등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경한은 10년간 초등학교 급식시장을 사업의 주무대로 옮긴다. 기업체 식당 시공 기술력이 토대가 돼 대구 · 경북지역 초등학교의 40% 이상을 시공하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한 회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경산 공장 증설을 위해 대출받은 15억원 중 엔화와 달러화로 받은 8억원이 환율 급등으로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한 회장은 "달랑 있던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그것도 부족해 매일 은행에 찾아가 통사정해야 했다"며 "드문드문 수주한 학교급식 시설 공사와 일본 니센과의 제휴로 만든 염색기를 섬유업체에 팔아 빚을 갚으면서 회사를 간신히 꾸려나갔다"고 털어놨다.
외환위기 터널을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한 회장은 연구개발(R&D)에 더 박차를 가했다. 급식설비 공사를 하면서 눈여겨 봐왔던 식품시장에서 레토르토 식품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간 10억여원을 들여 일본제품보다 우수한 멸균기 '스테리-에이스'를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 회장은 "국내외 전시회를 다 찾아다니며 제품을 알렸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며 "전시회를 함께 다니면서 알게 된 어묵회사에서 1대를 구매해줘 마수걸이를 했지만 이후 한동안 판매 제로였다"고 회고했다. 이 때 한 회장은 두 아들 중 장남인 한균식 대표가 1998년 대학(경일대 무역학과)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회사로 불러들였다. 한 대표는 출근해 얼마간 회사 살림살이를 배운 뒤 바로 영업현장으로 나갔다. 2006년께부터 식품업체들이 레토르토 식품 생산을 확대하면서 개점휴업상태였던 멸균기의 수요도 커졌다. 이때 가격과 기술면에서 외국제품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시장 1위자리를 꿰찼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식품공장에 들어가는 생산라인 전체를 설계시공해주는 식품제조 설비 엔지니어링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 식품회사 한 곳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최근 성공적으로 시공을 마쳤다. 지난 3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한 대표는 "올해는 식품공장의 식품제조설비 엔지니어링 영업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경한은 경산2산업단지 내 7600㎡의 공장용지에 30억원을 들여 내년 7월 신공장을 착공한다. 이 공장이 완공되는 2012년부터는 레토르토식품 멸균기를 비롯 식품공장에 들어가는 기기 모두를 자체 생산하는 능력을 구축하게 된다. 한 회장은 "그동안 18억~20억원을 맴돌았던 매출이 멸균기 판매가 늘면서 지난해 43억원을 올렸다"며 "올해는 식품공장의 설비 엔지니어링 사업 확대로 60억원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경산(경북)=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