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물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금융위기가 미국의 월가로 대표되는 시장과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저금리 정책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요즈음의 단기적 경제 상황 대처에만 급급한 나머지 저금리 정책의 해악에 대해선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경제가 탄탄한 회복세로 돌아서기 전까지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기로 한 공조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자율은 현재와 미래 자원 간의 중요도를 비교하는 사람들의 시간선호율이다. 현재 자원을 좋아할수록 이자율은 높아진다. 이제 저축이 증가하면 사람들이 현재의 자원보다 미래의 자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해져 이자율이 낮아지고,증가한 저축이 투자로 연결돼 경제의 생산능력이 커짐으로써 견실한 경제성장이 이뤄진다. 이처럼 일견 엉성하게 보이는 거시경제도 저축과 투자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야 돌아간다.

반면에 사람들의 시간선호가 변하지 않아 소비와 저축 행태는 그대로인데도 통화량을 늘려 장기간 이자율을 낮추면 각 경제 주체들은 정말로 시간선호가 변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낮아진 이자율에 따라 기업 투자는 증가하지만 소비와 저축에는 변화가 없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갈 저축과 투자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경기는 이를 정리해야 하는 불황으로 접어든다. 저축과 투자의 총량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이들의 시제간(時際間, intertemporal) 배분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잃어버린 10년이 잉태되기까지의 역사는 길다. 베트남 전쟁 등으로 증가한 과잉 달러로 1970년대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당시 미 FRB 의장이었던 볼커는 고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강한 달러가 되면서 미국 기업들은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됐다.

이에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가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The Plaza Accord)에 따라 약한 달러를 만들기로 했다. 이후 미국 산업은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일본의 경우 달러 대비 엔화 강세로 수출 기업들이 생산비용도 건지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이에 다시 미국,일본,독일이 19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The Reverse Plaza Accord)에 따라 강한 달러를 만들기로 했으며 일본의 저금리 정책도 이를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돈을 풀어 장기간 유지한 저금리가 거품 경제를 낳은 셈이다.

저금리 유지를 위해 돈을 많이 풀었지만 물가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서둘러 출구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도 커다란 함정이 있다. 총체적인 집계변수인 소비자물가나 생산자물가도 금리 변화 같은 화폐적 충격에 변동이 생기며 조정되지만 실제로 문제를 일으키는 시장을 분석하는 데에는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정보를 왜곡한다. 그린스펀 전 FRB 의장도 이 함정에 빠져 풀린 돈이 주택시장에 몰리면서 경제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 물가만 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잘못된 투자나 소비를 그대로 살리면서 경제를 고치기는 어렵다. 버리는 수밖에 없다. 불황이란 바로 이렇게 잘못된 소비와 투자로는 경제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으니 이를 바로 고치라는 시장의 신호인 것이다. 저금리로 빚어진 문제를 다시 저금리로 해결하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자율과 금융위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서둘러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한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