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국내 기업 KT&G를 공격해 유명해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피터 린치 이후 가장 뛰어난 펀드매니저로 불리는 윌리엄 밀러는 철학박사다. 그래도 이들은 철학이 자신의 투자 세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할 뿐 스스로를 철학자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지 소로스는 다르다. 그는 철학이 투자 성공의 이론적 토대라고 얘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철학자로 규정한다.

최근 출간된 《이기는 패러다임》에서도 소로스는 금융시장과 철학,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넘나들며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고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설립한 중부유럽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묶어 놓은 것이다.

책은 모두 5개의 강연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는 자신이 헤지펀드로 크게 성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산사업가가 될 수 있었던 '개념의 틀'을 소개한다. 소로스 투자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불확실성' '재귀성' '오류성'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강연은 그가 설립한 재단의 이름이자 사회철학적 지향점인 '열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정치적 입장을 소개한다. 마지막 강연에서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 글로벌 경제를 점검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소로스의 사고체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두 명의 인물이 있다. 한 명은 과학철학자이자 런던정경대 교수였던 칼 포퍼이고,다른 한 명은 그의 아버지다. 포퍼는 소로스를 철학이란 학문으로 인도했고,아버지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원리를 삶으로 보여주었다.

인간의 이해가 불완전하다고 본 포퍼는 '반증'을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과학이 과학인 것은 바로 반증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포퍼의 이 개념을 수용한 소로스는 세상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라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의 전쟁 포로로 끌려갔고 2차 대전 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목숨을 건진 아버지의 경험과 삶을 통해서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배웠다.

소로스는 2007년 이후 금융위기를 사상의 실패로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누구보다 현대경제학에 비판의 칼날을 세운다. 특히 완전경쟁 이론이나 효율적 시장 가설이 공격 대상이다. 모든 정보를 가진 완벽한 존재로 인간을 묘사하는 완전경쟁 이론은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1980년대 이후 현대 경제학을 지배했다. 소로스는 이를 '시장 근본주의'라고 부르는데,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결과가 바로 이번 금융위기라는 것이다.

소로스의 거품이론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소로스는 거품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유행하는 추세와 그 추세에 대한 착각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 거품이다. 이자율이 낮아지고 가격이 상승하면 부동산 호황이 촉진된다. 그리고 부동산 담보 가치가 대출 시장과 상관없다는 착각이 등장한다. 뒤 이어 사람들의 신용도도 올라가고 대출 기준도 완화되면서 호황의 정점에서 대출 규모는 최대에 달한다. 그러다 반전이 이뤄지고 거품이 붕괴한다. 과연 오늘날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소로스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상건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