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구이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전국적으로 곱창집이 성업 중이다. 많은 가게들이 원조를 내세우지만 왕십리에 있는 '안경할머니곱창'은 서울에서 돼지곱창의 원조로 꼽힌다.

지하철 2호선 신당역 2번 출구를 나와 기업은행 골목으로 접어들면 중앙시장과 연결된다. 좁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곱창집들이 나타난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곱창집이 올해로 38년째 한자리에서 영업 중인 '안경할머니곱창'이다. 지난 16일 오후 곱창집에 들어서자 김영례씨(78 · 사진)가 저녁 손님들을 맞기 위해 열심히 곱창을 굽고 있었다.

"자,곱창 하나 맛봐.공짜야 공짜…."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갓 구운 곱창을 집게로 집어 입에 넣어줬다. 김씨는 입이 걸어 처음 보는 고객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말을 하고 곱창을 준다. 단골 손님들은 김씨를 '욕쟁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김씨는 포장마차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원래 가게 앞의 2층짜리 건물을 사 두 곳에서 영업을 할 정도로 돈을 모았다. 하지만 곱창구이의 식재료인 돼지막창을 사서 손질하고 양념하는 전 과정을 혼자서 직접 한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리지만 내가 안 만들면 맛이 없대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 얼굴을 봐서라도 내가 해야지." 김씨는 "부산 광주 등에 사는 수십년 된 단골들이 자식들의 손을 끌고 일부러 오는 경우도 많다"며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만든 곱창을 먹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요즘은 임대료가 비싼 서울 강남에도 곱창집들이 많이 생겨났지만,곱창은 원래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다. '할머니곱창'의 경우 1인당 9000원이면 맛있게 갓 볶아낸 쫄깃쫄깃한 곱창을 즐길 수 있다. 하루 평균 200명 정도가 방문해 월 매출은 5000만원,순이익이 1500만원을 넘는다.

객단가가 높지 않은 돼지곱창으로 큰 돈을 모은 것은 소비자 확대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초 시장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피곤함을 달래려고 소주 한 잔 하는 안주 메뉴였으나,고추장 구이의 매콤달콤한 맛이 알려지면서 직장인은 물론 20,30대 여성들이 찾아오면서 고객층이 두터워졌단다.

장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안치헌 사장은 '할머니곱창'이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을 3가지로 분석했다. 곱창은 초벌구이를 거쳐 3번 구워 만들어 다른 점포와 육질이 다르며 할머니가 자체 개발한 고추장 소스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연탄불 직화구이를 고집한 것도 주효했다. 훈훈한 인심도 성공 배경이다. 손님들은 음식을 먹고 나갈 때 자신이 먹은 양을 스스로 계산해 돈을 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전 가업 승계에 나선 안 사장은 "올 하반기부터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해 전국적으로 가게를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