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그린 슈트'란 말을 들고 나왔다. '그린 슈트'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서 봄 새싹이 돋아나듯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린 슈트는 1990년대 초 경기 침체기 때 노먼 래리 영국 재무장관이 처음 사용했다. 지난해 3월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다시 언급하면서 널리 퍼졌다. 그린 슈트는 경제가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한두 가지 지표가 호전될 경우 쓰는 말로 지금처럼 회복세가 완연할 때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총재가 미국 경제를 두고 이 말을 쓴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김 총재가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차원에서 이 용어를 꺼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미국 경제 호전되고 있지만

미국은 소비로 경제가 굴러가는 나라다. 지난달 미국 소매 판매액은 지난 2월에 비해 1.6%,전년 같은달에 비해 7.6% 증가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의 평균 예상치 1.2%(전달 대비)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일자리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달 신규 일자리는 16만2000개 늘어 2007년 3월 이후 최고 증가폭을 기록했다. 미국은 2007년 1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일자리가 매달 줄었지만 지난해 11월 일자리가 증가세로 바뀌었으며 지난달엔 3년 만에 최고를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고용시장 회복이 모서리를 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는 작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5%에서 지난 1월 2.7%로 높인 데 이어 JP모건(3.3%→3.4%) 도이치뱅크(3.6%→3.8%) 골드만삭스(2.3%→2.5%) 바클레이즈(3.4%→3.5%) 등도 상향 조정 행진에 동참했다.

◆지속성에 의문

문제는 지속성이다. 소비가 꾸준히 늘기 위해선 역시 소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자리는 늘고 있지만 실업률은 9.7%에 이르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가운데 그간 없어졌던 일자리가 조금씩 다시 생긴다는 의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저축률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진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 진행되고 제로 수준이던 저축률이 5% 이상으로 올랐지만 최근 다시 4%대로 하락했다. 저축률이 떨어진 것은 소비에 적극 나선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쓸 돈이 늘어나는 속도가 둔화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며 정부가 부채비율을 감축키로 해 재정지출이 줄어들 것이란 점도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골든 골과 옐로 위즈 '갈림길'

미국 월가에선 '그린 슈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골든 골'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골든 골은 가을에 황금빛 열매가 열리듯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에 들어가는 것을 지칭한다. 그린 슈트가 한창 영글어야 골든 골이 형성될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월가에선 그린 슈트가 골든 골로 이어지려면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이 지나치게 빨리 시행돼선 안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는 시점으로 월가 투자은행(IB)들은 빨라야 올 4분기를 전망하고 있다.

그 전에 출구전략이 시행되면 골든 골은커녕 옐로 위즈(시든 잡초)처럼 경제가 더블딥(이중하강)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옐로 위즈는 작년 6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처음 썼다.

여기엔 유럽이 그리스의 재정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오히려 양적 확대를 추가 검토하는 상황이란 점도 반영돼 있다. 중국이 올해 1분기 11.9%에 이르는 고성장을 이뤘지만 긴축을 펼 경우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란 점도 한몫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도 이런 대내외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한국은행이 1분기 성장률을 1.6%로 제시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핵심으로 하는 출구전략 시행시점이 조금 당겨질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경기에 영향을 주고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는 등 전방위적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