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늘 따뜻하면서도 조화로운 느낌을 주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고향과 가족일 겁니다. 저도 고향은 산처럼 높게 서 있고,가족은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같다는 생각을 해요. "

조선대 부총장을 지낸 중견 화가 황영성씨(69)는 화업 40년 동안 추억의 '노스탤지어'를 고집스럽게 화제(畵題)로 삼아왔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개인전(5월2일까지)을 갖고 있는 황씨는 특유의 문양화된 화법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족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과 가족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안식처'라는 믿음 때문이다.

황씨는 이 같은 '노스탤지어 아트'의 참신성을 인정받아 2006~2007년 이탈리아 나폴리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등에 초대되기도 했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 역시 '고향 이야기'다. 잊혀져가는 고향을 통해 가슴 한편에 새겨진 향수와 희망의 메시지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에서다. 전시장에는 찌그러진 초가집이며 소달구지를 타고 장에 가는 여인,큰 눈을 끔벅이는 황소,황톳길 풍경 등 어린 시절의 삶터에서 건져 올린 '고향 스토리' 60여점이 걸려 있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포함됐다.

"제 고향은 강원도 철원입니다. 그곳에서 아홉 살까지 살다 전쟁이 나는 바람에 전라도 광주로 내려왔어요. 나중에 다시 찾아가보니 제가 태어난 곳은 없어졌더군요. 누구나 저처럼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찾으려 하지 않겠어요? 고향이란 애틋한 그리움과 위안을 주는 동시에 추억과 여유가 숨쉬는 곳이거든요. "

한결같이 고향과 가족을 소재로 삼긴 했지만 그의 화풍은 한 가지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왔다. 회색이 주를 이룬 1970년대의 '회색 지대'와 1980년대 '녹색 지대',1990년대 '모노크롬(단색)'연작에 이어 1990년 중반 이후 반구상 형태의 기호화된 '가족'시리즈까지 그의 변화는 계속됐다.

"70년대 초가집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그 집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과 외양간에 살고 있던 소 등을 회색으로 표현하게 됐죠."

1980년 들어선 농촌에서 일하는 아낙네와 농부들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이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논밭의 풍경을 중점적으로 그리다보니 녹색조의 작품을 많이 그렸어요. 일부러 하늘에서 내려다본 부감법을 사용해 논밭의 푸르름을 강조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녹색 혁명을 화면에서 먼저 시도한 셈이죠."

하지만 1990년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캐나다~멕시코~콜롬비아~페루에 이르는 '아메리칸 인디언 루트'를 여행한 뒤부터 그의 고향 · 가족 개념은 지구촌으로 확장됐다. 화면의 형식도 달라졌다. 화폭을 격자 무늬로 분할한 뒤 아이콘처럼 이미지를 배열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한 가족과 고향으로 파악하고 만물이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화면에 풀어낸 것"이라며 "아이콘 같은 이미지 배열은 무등산에 있는 증심사의 오백 나한이 깨달음의 과정은 달랐지만 똑같은 크기로 배치돼 있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