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들어온 노래들,지겨워졌어/이젠 남의 노랜 물려/(중략)/나를 듣고 싶어/내가 날 들을 수 있게/내게 카트리지 바늘 두 갤 박아줘/내 땀구멍 수만큼 날찔러줘'('내게 카트리지 바늘 두 갤 박아줘' 부분)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차주일 시인이 첫 시집 《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펴냄)을 내놓았다. 그는 이 시집에서 인생의 흐름에 따라 쌓인 시간과 그 속의 '처연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밀도 있게 엮어낸다. 몸 위에 축음기 바늘을 올려놓고 싶을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삶의 내력을 '가족'이라는 창을 통해 따스하게 변주해낸다. 특히 엄마와 어머니,아버지,외할머니 등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혈육의 내음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보증금 천에 월세 사십의 집주인은 냄새다. /(중략)/가출에서 돌아온 첫째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질기게도 울었다. 수건 한 장을 같이 사용하던 넷은 믿었다,첫째가 돌아온 이유가 수건 냄새 때문이라고.'('냄새의 소유권' 부부)

그의 시들은 '지나온 시간들을 섬세하게 채집하고 구성해 그 안의 기억들을 재현'하는 동시에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아스라하게 환기'(유성호 문학평론가)하기도 한다. '먼 훗날,병실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나는 검지를 세워 아버지 손바닥에 편지를 썼다/(중략)/아버지는 내 검지를 만년필 튜브처럼 쥐었다 놓았다/내가 그 답장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도'('검지가 누운 각도' 부분)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