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회사 동아정기는 2004년 '유령주식' 파문 여파로 증시에서 퇴출됐다. 당시 경영권을 인수했던 대주주가 유상증자 대금을 허위납입하고 주가를 조작하면서 부도가 나 문을 닫을 위기였다. 하지만 상장폐지 뒤에도 임직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퇴출 낙인'을 극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완성차 업체들의 발주가 다시 늘었고 3년째 영업이익 흑자를 내고 있다.

10년 만에 재상장하는 만도를 계기로 퇴출 이후 기사회생한 '패자부활'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부도가 발생하거나 자본잠식,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레드 카드'를 받았던 기업들이 정상화에 성공하며 증시 재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패자부활 기업 "퇴출은 기회"

패자부활 기업들은 대부분 법정관리를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상장폐지 시련을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5년 자본잠식으로 코스닥에서 퇴출됐던 전원공급장치(SMPS) 업체 파워넷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 2월 법정관리를 5년 만에 졸업한 파워넷은 지난해 매출 765억원,영업이익 65억원을 거둬들였다. 전성기 때 못지않은 실적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메디슨은 2002년 퇴출 이듬해부터 세 자릿수 영업이익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2006년 법정관리를 졸업한 메디슨은 지난해 영업이익 306억원을 기록하며 재상장 시기를 엿보고 있다.

티케이케미칼(옛 동국무역) 대선주조 환영철강 킴스클럽마트(옛 해태유통) 동원데어리푸드(옛 해태유업) 대농 오리엔트전자(옛 화인썬트로닉스) 천지산업 등도 법정관리를 통해 체질을 개선한 기업들이다. 팬택은 워크아웃을 패자부활의 기회로 삼아 2007년 3분기 이후 10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부업 정리,본업에 주력

대부분 주력사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 점이 주효했다. 두원중공업은 2000년 상장폐지 직후 자본잠식 빌미가 됐던 건설업 면허를 자진 반납하고 본업인 자동차 부품제조에 주력했다. 지난해 노후차 교체 세제 지원으로 신차 판매가 늘어난 덕에 이 회사 매출은 1839억원,순이익은 161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2.2%와 61.4% 늘었다.

대농은 2002년 퇴출 이후 '제2창업'을 선언,기존 사업들을 정리하고 거품을 뺐다. 대농 관계자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직염사업부와 포염사업부를 팔고 동남아보다 경쟁력이 낮은 면방사업도 과감히 축소했다"며 "재생섬유 등 제품 차별화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34% 늘었다"고 설명했다.

오리엔트전자도 2003년 퇴출된 뒤 특허사업인 SMPS에 생산력을 집중했다. 회사 관계자는 "횡령사건 등 상장폐지 당시 상처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SMPS에 주력했다"며 "그 결과 국내 산업용 SMPS 분야에서 90%를 차지하던 일본 제품을 밀어내고 1위 업체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증시 재상장 속속 추진

고강도 구조조정과 함께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보안업체 하우리는 감사의견 거절로 2005년 퇴출됐지만 특유의 컴퓨터 백신 기술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하우리 관계자는 "퇴출 이후 끝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백신 기술력 하나만 믿고 모두가 똘똘 뭉쳤다"며 "불법 다운로드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해 유료 고객을 늘리면서 서비스 질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하우리는 안철수연구소에 넘어갔던 국방부의 바이러스방역체계 프로젝트를 지난해 되찾아오는 성과를 거뒀다.

희성그룹 계열 건설업체인 삼보이엔씨(옛 삼보지질)는 최근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영업이익 171억원을 올려 전년보다 436%나 급증했다. 기초토목처리 부문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토대로 해외 수주를 잇따라 따내 거둔 성과다.

'유령주식' 파문을 일으켰던 동아정기도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자동차 뒷바퀴축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시련을 버텨냈다. 동아정기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 하중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뒷바퀴축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국내 뒷바퀴축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증시에 되돌아온 진로 애강리메텍 동양강철에 이어 만도 환영철강이 증시 컴백을 예고한 상태이며 나머지 패자부활 기업들도 속속 재상장에 나설 예정이다. 디케이티(옛 대경테크노스)가 지난해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보류한 상태이며,평안섬유공업은 퇴출 27년 만에 재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조진형/김유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