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한 것은 상품 설계의 기초가 되는 주택 모기지자산 내역에 비춰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파생상품을 팔아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쳤다고 판단해서다. SEC가 법원에 제출한 혐의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이어서 이번에는 말 많던 골드만삭스의 파생상품 투자 중개가 꼬리를 잡히게 될 공산이 커졌다.

SEC가 법원에 제시한 소장을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2007년 헤지펀드인 폴슨앤드컴퍼니의 의뢰를 받아 '애버커스(Abacus)'로 알려진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했다. CDO는 모기지 대출과 BBB 등급의 채권 등을 섞어 복잡하게 만든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문제는 폴슨앤드컴퍼니가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될 것을 예상하고 CDO 발행을 의뢰했고 골드만삭스는 이를 알고도 CDO 발행 · 매매를 주선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CDO 발행 과정에서 객관적인 제3자(ACA매니지먼트)를 내세웠지만 이 과정에서 폴슨앤드컴퍼니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게 SEC의 설명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렇게 만든 CDO를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한편 CDO가 부실화되면 폴슨앤드컴퍼니가 큰돈을 벌 수 있도록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계약을 주선했다. 1994년 설립된 폴슨앤드컴퍼니는 주식 및 채권 매매를 주로 골드만삭스에 위탁해왔을 정도로 두 회사는 가까운 사이다.

이 같은 거래로 CDO 투자자들은 1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4월에 발행된 CDO는 편입된 모기지 증권의 99%가 등급이 떨어지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반면 CDO가 부실화될 것으로 보고 CDS를 적극 매입한 폴슨은 10억달러를 벌었다. 파생상품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골드만삭스가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탓에 특정 고객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다른 고객들은 결과적으로 손실을 본 것이다. 이 같은 거래를 통해 골드만삭스는 1500만달러의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해당 CDO 투자로 총 9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EC는 부당 내부자거래 혐의로 골드만삭스와 함께 31세의 스타 트레이더인 패브리스 투레 부사장을 제소했지만 다른 골드만삭스 고위 임원들도 연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투레 부사장은 특히 ACA매니지먼트에 폴슨이 CDO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2억달러를 투자했다고 거짓 정보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그동안 고객의 이익에 앞서 회사 이익부터 챙겨왔다는 지적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4월 초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로이드 블랑크페인 최고경영자와 게리 콘 사장은 "항상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고위 임원들은 회사가 주택가격 하락에 베팅할 수 있도록 관련 파생상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시장에서도 골드만삭스는 2007년부터 부동산 시장이 곤두박질칠 것으로 보고 매도를 유도하는 거래를 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자 사설에서 골드만삭스가 주택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을 판매하고 상품의 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베팅을 한 유일한 금융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AFP통신도 이런 사기극에 다른 금융사들도 연루됐을 수 있다며 SEC의 조사가 월가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독일은행 IKB는 이번 제소와 별도로 골드만삭스에 손실 보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골드만삭스 주주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2008년 10월 골드만삭스의 영구 우선주를 매입하는 형태로 50억달러를 투자하고 50억달러의 주식매수권리(워런트)를 확보한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는 하루 새 10억달러의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