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진방 회장 "韓ㆍ中ㆍ日 해운전쟁 벌어지는데…정부지원 확대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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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방 한국선주협회 회장
해운업 홀대 서러워
선박은행은 오랜 숙원
해운 시황 바닥은 쳤다
해운업 홀대 서러워
선박은행은 오랜 숙원
해운 시황 바닥은 쳤다
"한국의 해운업이 한 해 외화를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아십니까?""정부가 해운업체에 수출의 탑을 시상한 게 언제부터일까요?"
이진방 한국선주협회 회장(대한해운 회장 · 63)은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오히려 질문부터 던졌다. '해운업계의 선비'라 불릴 만큼 차분한 성격이지만,이 대목에선 가볍게 입술을 떨었다. 억울함이 묻어났다.
해운 시황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8년,국내 해운업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약 370억달러에 달했다. 그해 기준 한국은행이 집계한 4대 외화 가득(수출금액에서 수입원재료비를 뺀 액수)업종에 조선(431억달러),석유제품(376억달러),일반기계(373억달러) 등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효자 업종이지만 정부는 2006년에서야 '수출의 탑' 수상자 명단에 해운업을 처음 포함시켰다. 이 회장은 "수출 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박정희 정부 시절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간 해운업이 얼마나 홀대 받았는지 방증하는 것 아니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항변엔 설득력이 있었다. 그 스스로 수출 화주와 해운,양쪽의 입장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성물산에 입사,국산 제품을 세계 곳곳에 내다파는 '상사 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제조업체인 삼성코닝으로 옮겨서는 임원까지 지냈다. 선친인 이맹기 대한해운 창업 회장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것은 56세이던 2003년이다.
지난 1월 회원사 투표에 의해 협회장에 재선된 이 회장은 "근본부터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해운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업계의 숙원 사업인 선박은행 설립도 임기 중 주요 과제다. 이 회장은 선박은행과 관련,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주주 구성도 해야 하지만 올해 안에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해운업 시황은 어떻습니까.
"미국발(發) 금융 위기로 글로벌 해상 물동량이 급격히 줄면서 지난해 최악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세계 유수의 선사들도 넘어갈 정도였으니까요. 국내 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들 간신히 버텨오고 있는 셈이지요. 다행히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호전되면서 바닥은 벗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벌크 · 탱커 · 컨테이너선 순으로 회복되고 있어요. 올 상반기가 지나면 회복세가 완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업체마다 유동성 확보에 골몰한 나머지 급하게 돈을 조달하다보니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로 가장 타격을 받은 곳중 하나가 해운업계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을 때 호황이 상하이 엑스포가 열리는 2010년까지는 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죠.이를 근거로 배를 사들였습니다. 그게 지금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겁니다. 전체 회원사 수는 작년 이맘 때와 비교해 오히려 2~3개 늘었습니다. 30개사가 지난해 위기 때 폐업했는데 최근 배값이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지다보니 새롭게 진입하는 업체들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습니다. "
▼해운업이 홀대받고 있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7%가 배로 움직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해운업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은 드물어요. 이웃나라 일본에선 '바다의 날'이 국경일로 지정돼 있습니다. 우리는 '바다의 날'이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영국 미국 일본을 봐도 그렇고요. 미국에는 해군 출신 합참의장이 숱합니다. "
▼정부가 해운 5대 강국을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예전엔 해양수산부라는 주무 부처가 있어 지원책이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 국토해양부로 통합되면서 해운업이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정부 지원이 절실할 때가 없는데 아쉬울 뿐입니다. 중국이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찾아오고 있어요. 이럴 때 업계는 물론이고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해운 5대 강국에 진입하기 위한 모멘텀을 잃고 말 것입니다. "
▼중국 말씀을 하셨는데,사정이 어떻습니까.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운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드나드는 배는 모두 중국 선사를 이용하도록 하겠다니 무섭지 않습니까. 지금은 워낙 중국의 해상 물동량이 많기 때문에 우리도 기회를 향유하고 있지만,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중국 정부가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국이란 장점을 활용해 배를 엄청나게 짓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풀리면 한국 등 다른 해운 선사들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 것입니다. "
▼일본도 비슷한 자국 업체 보호책이 있죠.
"일본도 정부,선사,조선업체,화주들이 똘똘 뭉쳐 있습니다. '자기 물건은 자기 배로 운반한다'는 게 관행이에요. 이렇게 해서 일본은 대형 회사를 많이 키웠습니다. 일본 최대 선사인NYK의 연간 선복량(화물 선적량)이 우리나라 전체 선복량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은 어떻습니까. 한국전력이 운임비를 조금 아끼겠다고 일본 선사에 맡겼습니다. t당 몇 센트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말이죠.작년엔 해양 분야에 관련된 모든 협회들을 통합해 해양총연합회를 구성했습니다. 오죽 힘이 없으면 그랬겠습니까. 해운업과 해양에 대한 인식과 위상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
▼전문가들마다 선박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지난해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한 덕분에 선박펀드가 꽤 조성됐고,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사실 국내 금융기관에 해운 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2008년 해운 시황 피크 때 너도나도 돈 빌려준다고 했다가,지금은 어느 곳도 돈 빌려준다는 데가 없습니다. 지난 2월에 부산시와 선박은행을 설립하기로 MOU(양해각서)를 맺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선박은행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 주세요.
"실제 현실화되려면 2~3년 정도 걸릴 겁니다. 타당성 검토를 위해 조만간 용역을 맡길 계획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주를 구성하는 일인데 이해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보니까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엔 부산은행도 있고 조선업체들도 호응하는 분위기입니다. 연말께면 주주 구성 등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겁니다. "
▼선박 온실가스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국내 해운회사들도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운사는 연비효율지수를 일일이 보고해야 합니다. 해운사끼리 일종의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거나 정부에 탄소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무제한 연비 경쟁이 시작된다는 얘기예요. 기존 선박에까지 무리하게 적용하지는 않겠지만,새로 발주하는 선박은 연비 효율이 좋고 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제품들 위주가 될 겁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어려우시겠지만 해운 시황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정말 난감한 질문이네요. 해운 시황은 환율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중국의 올 1분기 철광석 수입이 전년 대비 18% 증가하는 등 중국,인도 등의 성장이 매섭습니다. 문제는 선박의 공급량인데,조선사들이 워낙 입을 다물고 있어 알기는 어렵지만 계약이 취소되거나 연장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걱정한 것보다 공급량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
▼대한해운의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요즘 제 힘의 30% 정도는 선주협회 일에 쏟고 있습니다. 직원들한테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올해는 흑자전환하는 게 목표입니다. 대한해운은 2007년 328명의 직원으로 330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당시 증권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8년엔 옛 인사동 사옥 시대를 접고 삼성동 신사옥으로 터전을 옮기기도 했습니다. 그 저력을 믿고 있습니다. 조만간 긴 터널을 빠져나올 겁니다. "
박동휘/장창민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