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워싱턴포스트의 광고지면은 세계 정치 · 외교 1번지의 창(window)이자 확성기(loudspeaker)다. 미국 정책의 허실을 겨냥한 주장과 불만이 실릴 때도 많다. 광고 주체들이 내는 목소리는 기사 내용보다 더 흡인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근엔 유대인들이 워싱턴포스트 광고지면을 활용해 오바마 정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 내 유대인과 유대인 단체가 동원된 여론 전쟁이다. 유대인인 엘리 위젤씨는 '예루살렘을 위하여'라는 장문의 글로 한 페이지를 점령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애시당초 유대인의 땅이며 유대인의 영혼 중 영혼이라고 전개했다.

미국유대인위원회(AJC)는 통 면을 빌려 적국인 이란의 지도자와 적대세력인 헤즈볼라,하마스,무슬림단체 지도자의 얼굴을 내걸었다. 이스라엘은 암적 종양이고,유대인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이들의 자극적인 발언도 싣고 유대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이스라엘과 함께한다고 대비시켰다. 세계유대인의회(WJC)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게재했다. 편지를 통해 오바마의 중동평화 정책이 빗나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정부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중동평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첫 조치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줄이고,더 이상 정착촌을 짓지 말라고 이스라엘에 요구했다. 이에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반발했다. 지난 3월 초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자 새로운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모욕적인 정책이라며 발끈했다.

모국을 위한 미국 내 유대인들의 광고전은 단순한 여론전쟁이 아니다. 미 정부와 의회,재계,월가 곳곳에 포진해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계의 각성과 결집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쥐고 흔드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도 잘 알려진 유대계다.

그러나 요란스런 언론플레이와 주요 인사만으로 유대계 파워를 가늠한다면 오산이다. 유대인 마크 야콥씨가 보여준 유대인들의 저력은 훨씬 폭 넓고 묵직했다. 그는 버지니아주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Jewish Community Center)를 운영하는 국장보이다. 여론전과 관련한 견해를 구하자 손사래를 쳤다. 대신 센터를 한 바퀴 돌면서 실내 수영장과 실내 농구장,방과후 어린이 공부방,피트니스센터,소극장,유아 놀이방과 수면실 등을 소개했다.

야콥씨는 미국에 500여만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으며 175개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가 설립돼 있다고 전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5000여명의 유대인들이 1991년 지은 센터를 이용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세워 온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결속해 온 게 유대인 디아스포라(이산)의 역사라고 했다.

야콥씨가 꼽은 버지니아주 센터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회원 중 약 40%가 비유대인이라는 점이다. 미국 내 유대인 센터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유대문화를 접하고 유대인,이스라엘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이란다. 그는 자발적인 유대인 기부금이 센터로 활발하게 유입된다는 대목까지 빼놓지 않았다. 유대계의 진정한 파워는 미국 저변을 조용히 다지는 커뮤니티센터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