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칼레의 시민'이 생각나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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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위해 죽으러 나선 6명 지도자
책임·희생 없이 자리 탐내지 말아야
책임·희생 없이 자리 탐내지 말아야
사르트르는 본질을 논한다는 핑계로 행동을 미루는 삶을 경계했다. 철학자의 말을 빌 것 없이 사람을 나타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친구와 적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분되듯 지도자의 됨됨이도 위기 때 드러난다. '칼레의 시민'은 그런 점에서 지도자의 책무와 도덕성을 뜻하는'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가 왕위계승권 및 영토를 놓고 1337년부터 1453년까지 계속한'백년 전쟁'초기.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1345년 노르망디에 상륙,이듬해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칼레로 진격,식량보급로를 끊고 포위한다. 11개월 동안이나 완강하게 저항하던 칼레는 1347년 마침내 항복한다.
거센 항전에 분노한 에드워드 3세는 주민 대학살을 그만두는 대신 대표자 6명을 공개처형하겠다며 6명은 맨발로 목에 직접 밧줄을 두르고 성문 열쇠를 갖고 나오도록 명한다. 어쩔 줄 모르는 시민들 앞에 칼레 최고의 재력가인 외스타슈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서자 이어서 법률가 장 데르 등 5명이 자원한다.
시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희생정신과 용기에 감동한 에드워드 3세가 처형을 포기,살려줬다는 게 장 프루사르의'연대기'속 내용이다.
이후 530여년이 지난 1884년 칼레 시장 오메르 드와브랭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에게 이들 위대한 6명의 모습을 형상화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로댕이 15년에 걸쳐 완성한 모습은 시민들이 원한 영웅상,주연격인 외스타슈 생 피에르를 중앙에 두고 나머지 5명을 주위에 배열하는 고전적 조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댕은 6명을 같은 평면에 배열하는 단순하고 극적인 구성을 택했을 뿐만 아니라 인물 모두를 단호한 의지의 초인적 영웅이 아닌,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냈다.
조각은 실망한 칼레 시민들의 외면으로 바닷가 한적한 곳에 세워졌다 훗날 시청 앞으로 옮겨졌다. 로댕 생전에 4개,사후에 8개가 더 만들어진 '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청광장과 파리 로댕갤러리를 비롯 세계 곳곳에 놓여져 적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도시의 아픈 역사와 지도자들의 희생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온 국민이 더할 수 없는 비통에 빠졌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이래서야 어떻게 자식을 군대 보낼 수 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이런 마당에 한편에선 6 · 2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돈 선거가 거론되고 있다. 여주군수 입후보자가 해당 지역 국회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하려다 체포된 가운데 기초단체장 공천을 위해 7억원은 갖다내야 낙점된다고 하는가 하면 지방의원 입후보자 예정자의 공천헌금만 7000만~8000만원에 이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자치단체장 공천에 이처럼 거금이 오가는 것은 자치단체장이 되면 인사권,예산편성권,인허가권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을 써서 자치단체장이 되거나 지방의원이 된 사람,후원금이란 명목으로 공천 대가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그 돈의 출처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눈 앞의 불 보기보다 더 뻔하다.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누리는 권력,어딜 가든 남보다 먼저 받는 대접과 예우는 유사시엔 물론 평상시 그들이 감당해야 할 헌신과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입으로는 봉사와 헌신을 외치면서 실제론 일신의 안위와 권력을 무기로 한 비리에 매몰된다면 이땅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로댕 작품전이 30일부터 8월22일까지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선거에 나서는 이들은 물론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칼레의 시민'을 살펴볼 일이다. 사리사욕에 어두워 배신과 음모를 일삼은 이들의 최후가 새겨진 '지옥문'도 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가 왕위계승권 및 영토를 놓고 1337년부터 1453년까지 계속한'백년 전쟁'초기.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1345년 노르망디에 상륙,이듬해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칼레로 진격,식량보급로를 끊고 포위한다. 11개월 동안이나 완강하게 저항하던 칼레는 1347년 마침내 항복한다.
거센 항전에 분노한 에드워드 3세는 주민 대학살을 그만두는 대신 대표자 6명을 공개처형하겠다며 6명은 맨발로 목에 직접 밧줄을 두르고 성문 열쇠를 갖고 나오도록 명한다. 어쩔 줄 모르는 시민들 앞에 칼레 최고의 재력가인 외스타슈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서자 이어서 법률가 장 데르 등 5명이 자원한다.
시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희생정신과 용기에 감동한 에드워드 3세가 처형을 포기,살려줬다는 게 장 프루사르의'연대기'속 내용이다.
이후 530여년이 지난 1884년 칼레 시장 오메르 드와브랭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에게 이들 위대한 6명의 모습을 형상화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로댕이 15년에 걸쳐 완성한 모습은 시민들이 원한 영웅상,주연격인 외스타슈 생 피에르를 중앙에 두고 나머지 5명을 주위에 배열하는 고전적 조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댕은 6명을 같은 평면에 배열하는 단순하고 극적인 구성을 택했을 뿐만 아니라 인물 모두를 단호한 의지의 초인적 영웅이 아닌,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냈다.
조각은 실망한 칼레 시민들의 외면으로 바닷가 한적한 곳에 세워졌다 훗날 시청 앞으로 옮겨졌다. 로댕 생전에 4개,사후에 8개가 더 만들어진 '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청광장과 파리 로댕갤러리를 비롯 세계 곳곳에 놓여져 적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도시의 아픈 역사와 지도자들의 희생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온 국민이 더할 수 없는 비통에 빠졌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이래서야 어떻게 자식을 군대 보낼 수 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이런 마당에 한편에선 6 · 2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돈 선거가 거론되고 있다. 여주군수 입후보자가 해당 지역 국회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하려다 체포된 가운데 기초단체장 공천을 위해 7억원은 갖다내야 낙점된다고 하는가 하면 지방의원 입후보자 예정자의 공천헌금만 7000만~8000만원에 이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자치단체장 공천에 이처럼 거금이 오가는 것은 자치단체장이 되면 인사권,예산편성권,인허가권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을 써서 자치단체장이 되거나 지방의원이 된 사람,후원금이란 명목으로 공천 대가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그 돈의 출처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눈 앞의 불 보기보다 더 뻔하다.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누리는 권력,어딜 가든 남보다 먼저 받는 대접과 예우는 유사시엔 물론 평상시 그들이 감당해야 할 헌신과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입으로는 봉사와 헌신을 외치면서 실제론 일신의 안위와 권력을 무기로 한 비리에 매몰된다면 이땅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로댕 작품전이 30일부터 8월22일까지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선거에 나서는 이들은 물론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칼레의 시민'을 살펴볼 일이다. 사리사욕에 어두워 배신과 음모를 일삼은 이들의 최후가 새겨진 '지옥문'도 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