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에티켓을 중시하는 스포츠다. 그 반면 아마추어 골퍼들의 친선라운드에서 사소한 규칙위반은 눈감아주는 경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골퍼들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미국PGA투어 대회에서 한 선수가 우승을 다투던 중 '규칙을 위반했다'며 스스로 벌타를 부과,귀감이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 조사에서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95%가 플레이 중 속인 적이 있다고 응답,골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두 사례를 비교한다.

최경주(40)가 첫날 단독선두에 나서 관심을 끌었던 미PGA투어 버라이즌 헤리티지.짐 퓨릭(미국)과 브라이언 데이비스(잉글랜드 · 사진)가 19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 아일랜드의 하버타운GL(파71) 18번홀(파4)에서 연장전을 벌였다. 데이비스의 두 번째 샷이 늪으로 된 워터해저드에 빠졌다. 퓨릭은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놓은 상황.데이비스가 해저드에서 칩샷(세 번째 샷)을 하려고 백스윙하는데 볼 옆 '나뒹구는 갈대'(루스 임페디먼트)를 건드리고 말았다. 골프규칙 13-4조에는 '플레이어는 볼이 해저드에 있을 경우 스트로크하기 전 그 안에 있는 루스 임페디먼트를 접촉하거나 움직여서는 안 된다. 위반시 2벌타다'라고 돼있다. 볼은 이미 그린에 올랐지만 클럽헤드가 갈대를 터치한 것을 안 데이비스는 곧바로 경기위원을 부른 뒤 스스로 2벌타를 부과했다. 물론 우승컵은 '2퍼트 파'로 마무리한 퓨릭에게 돌아갔다. 경기위원들은 경기 후 그 상황을 복기한 결과 데이비스가 백스윙 도중 나뒹굴던 갈대를 건드렸다고 보고 벌타를 확인했다.

'영원한 아마추어' 보비 존스는 '규칙을 지킨 것에 대해 칭찬하는 것은 보통시민이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칭찬받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데이비스의 행위는 당연한 듯하지만,우승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 '자진 신고'로 스스로 벌타를 감수한 것에 대해 동료선수나 팬들이 박수를 보낸다. 2004년 미PGA투어에 합류한 데이비스는 그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고,이번이 네 번째 2위다. 슬러거 화이트 미PGA투어 경기위원장은 "데이비스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해 품격 높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며 격려했다.

데이비스와 유사한 사례는 J P 헤이스와 재미교포 미셸 위한테서 찾을 수 있다. 헤이스는 2008년 말 미PGA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에서 비공인구를 사용한 것을 발견하고 자진 신고,실격을 감수했다. 자신만 눈 감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헤이스는 선수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2009년 투어카드를 잃고 말았다. 1년 후 퀄리파잉토너먼트에 재응시해 투어카드를 얻자 주위에서는 '양심의 승리'라며 박수를 보냈다.

미셸 위는 2006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데이비스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벙커샷을 하려고 클럽을 뒤로 빼는 순간 볼 옆에 있던 이끼를 건드리고 만 것.해저드에서 백스윙 도중 루스 임페디먼트를 움직였기 때문에 2벌타가 부과됐고,결국 트리플 보기로 홀아웃했다.

한편 퓨릭은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시즌 2승째,투어 통산 15승째를 올렸다. 최경주는 합계 2언더파 282타로 공동 41위에 머물렀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