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부조 작가 박철씨 개인전…"그림은 색감으로 가득찬 소리"
"그림을 그림으로 보지 말고 그 속에서 선율을 느끼라고 했던 칸딘스키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사실 회화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재료로 하는 음악이기도 하지요. "

서울 청담동 갤러리 서림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박철씨(59)는 20여년째 '음악과 미술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한지 부조(浮彫)작가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박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적인 정서를 은은하게 담아내는 한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당시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을 자주 찾아가곤 했는데 사람들이 버리고 간 멍석,기와,문짝 등이 널려 있더군요. 이런 물건들이 제 작업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바이올린과 맷방석,와당의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조화시키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였죠."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의 날렵한 형태미와 맷방석의 투박한 정감을 결합시키고자 했던 그는 울퉁불퉁한 한지죽의 시각적 효과까지 살려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최근에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던 종래 방식에서 벗어나 치자나 쑥,밤,오미자,홍화 등 천연 염료로 채색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황토빛 때깔이 우러난 바이올린의 선율을 음악소리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은갈색 바이올린 몸체를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는 "음악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깨워 영혼까지 울리는 숭고한 영역"이라며 "바이올린에 대한 단상을 정겨운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올린 소리에는 환희와 회한,슬픔이 응축돼 있어요. 인간과 사회,사람과 사람의 내면을 연결해주는 감성적인 매개가 곧 악기죠."

그는 "'듣고 싶다'는 말은 '그리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며 "화가에게 그림은 색감으로 가득찬 소리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미국 뉴욕 김포스터 갤러리 초대전도 준비하고 있다.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8~100호 크기의 작품 30여점을 내걸었다. (02)515-33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