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하다 망해버린 사장은 아무데도 찾아갈 곳이 없다. 친인척은 거의 원수가 되고,그토록 친하던 친구도 등을 돌린다. 함께 사는 가족들도 서로 쳐다보기조차 꺼린다. 재창업을 하고 싶지만 종잣돈을 빌려줄 사람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면 틀림없이 돈을 빨리 갚으라는 협박전화뿐이다. 이처럼 처참한 신세에 처한 중소기업인은 이제 남은 것이라곤 빚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폐업을 한 중소기업인에겐 아직 남아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영노하우다. 실패한 사장들은 모두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비록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둘째는 누적된 기술력이다. 이것 역시 영업엔 실패했지만 지금까지 엄청난 돈을 투입한 기술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최고의 신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운전자금 부족으로 주저앉은 사장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재기할 기회를 찾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전직 사장들은 줄잡아 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건 정말 국가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이들이 다시 산업전선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중소기업청(청장 김동선)은 폐업한 중소기업자가 다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억원의 예산을 새로 마련했다. 백운만 중기청 벤처정책과장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1개 업체당 10억원까지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돈은 중소기업진흥공단 각 지역본부를 통해 지원된다.

이 자금의 지원대상은 다음 5개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기존 사업체를 폐업한 뒤 5년이 지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2005년 5월 이후에 폐업한 사업자여야 한다. 여기서 재창업자란 실패한 개인기업 대표,실패한 법인기업 대표이사,실질적인 경영실권자 등을 말한다. 둘째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재창업자금지원을 결정한 이후 3개월 이내에 법인대표 등록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는 과거에 운영하던 사업체를 폐업했거나 재창업지원 결정 이후 3개월 이내에 폐업을 완료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폐업사유가 고의부도 사기 회사자금유용 등 부도덕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는 신용미회복자의 경우 총 부채규모가 15억원 이하여야 한다.

이 자금의 대출기간은 3년 거치 8년 이내이며 운전자금은 5년까지다. 신용대출의 경우는 시설자금 5년 이내,운전자금 3년 이내다. 또 운전자금의 대출한도는 5억원이다.

이번에 마련한 실패 중소기업인 재창업지원제도는 '벤처패자부활제도'와 상당히 다르다. 벤처부활제도는 평가등급이 B등급 이상이지만 이번 제도는 C등급 이상이면 지원받을 수 있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