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35)는 요즘 차에 기름을 넣을 때면 과거 애용하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빌딩 맞은편 주유소 대신 청담로 인근 주유소로 간다. 지난해 9월 회사 맞은편 주유소가 헐리고 그 자리에 빌딩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리는 "기름을 넣으려면 길을 우회해야 해 예전보다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주유소가 줄어들고 있다. 주유소를 팔겠다는 매물도 쏟아져 나온다. 이런 현상은 주유업계가 고유가 등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데다 땅값 상승으로 임대료 등의 부담까지 커진 탓이란 분석이다. '주유소 부자'도 옛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21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한 서울 지역 주유소는 1995년 말 832개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5년 말 715개,지난 2월 현재 688개로 17%가량 감소했다. 특히 서울에선 땅값이 비싸고 임대료가 높은 강남 지역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2002년 79개였던 강남구의 주유소는 지난 2월 현재 54개로 30% 이상 줄었고 서초구도 같은 기간 56개에서 48개로,송파구는 55개에서 46개로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는 같은 기간 전국 주유소가 1만746개에서 1만3197개로 23% 정도 증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국주유소협회 서울지회 관계자는 "주유소 하나를 차리려면 서울에서는 땅값만 3.3㎡(1평)당 최소 2500만원이고 강남은 8000만~1억원이어서 660㎡(200평) 기준으로 최대 200억원가량 소요된다"며 "그렇다고 강남에서 기름값을 2~4배로 받을 수도 없어 자영업자들이 임대료를 못 이기거나 땅을 갖고 있으면 빌딩을 세우려고 그만두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유소 매물도 쌓이고 있다. 이춘우 신한은행 부동산PB팀장은 "지난해 고객들이 주유소를 팔아 달라고 내놓은 매물이 2~3개였는데 올해는 6~7개로 늘었다"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3개가 강남 3개구에 있는 주유소"라고 말했다. 조별환 주유소경영자협회 대표는 "주유소를 판다고 내놓는 사람은 많은 반면 사려는 사람은 없어서 매수자 우위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직영으로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유사나 대리점 업체도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S사 관계자는 "강남이 서울에서는 직영점 매출이 가장 크지만 비싼 임대료로 수익은 거의 없다"며 "자영업자들은 그만두기라도 하지만 정유사나 판매 대리업체로서는 브랜드 홍보 효과가 큰 강남을 포기할 수도 없어 직영점에 슈퍼마켓,자동차용품 판매 등 부대사업을 늘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임도원/이현일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