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창동 감독 · 2007년)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던 전도연(37)이 '하녀'(임상수 감독)로 올 칸국제영화제(5월12~23일) 경쟁부문에서 다시 한번 여우주연상에 도전한다.

'하녀'는 고(故) 김기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치정극.부잣집 하녀가 주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며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이다. '밀양'에서 딸을 잃은 엄마가 신(神)에 매달리는 상황을 연기했던 전도연은 여기에서 너무 순수한 나머지 비극을 초래하는 은이 역을 해냈다. 21일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칸영화제 경쟁작 22편 중 한국 영화가 2편이나 되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 동반 진출작인 이창동 감독의 '시'(주연 윤정희)는 오래 전부터 영화제 측에서 기다렸던 작품이죠.한 국가의 두 작품이 경쟁부문에 나란히 오르기가 쉽지 않은 데 전 비경쟁부문에 추천되어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쟁에 진출한 자체가 영광스런 일이죠.칸이 아시아의 한 여배우에게 두 번이나 주연상을 줄 리는 없는데…."

3년 전 칸에서 레드카펫을 처음 밟았을 땐 '무식해서 용감했던'것 같다고 말했다. '칸영화제가 뭐기에 그리 호들갑인가'라며 시상식장에 올랐는데,막상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니 말할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밀양'의 엄마 모습이 전형적이지 않았던 게 심사위원들을 움직인 듯싶어요. 전형적인 캐릭터라면 '맞아' 했겠지만 가슴을 더 졸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녀'의 은이 역도 다섯 명의 주요 배역 중 유일하게 전형성을 벗어나 있어요. 너무 순수해서 본능과 욕망에 정직하고,그래서 당당할 수 있는 인물이죠.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캐릭터예요. "

은이는 전문대 유아교육과 출신으로 자기 집도 갖고 있다. 주인집 사람들의 팬티를 빨면서도 자기 몫을 한다는 당당함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진심을 무시당했을 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캐릭터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참고 견디며 아들을 검사로 키워낸 늙은 하녀(윤여정)와는 다르다. 주인집 부부(서우,이정재)도 다른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우리 시대의 하녀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단순 치정 멜로였던 원작보다 장르적으로 풍성해졌어요. 에로틱 서스펜스 스릴러 등을 총괄한다고나 할까요. 극중 정사 신은 시각적으로 파격적일 정도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감정선과 긴장감이 파격적이죠.가령 주인남자가 하녀의 방으로 들어오는 도중 옆방 아이방을 통과할 때 긴장감을 잘 포착했어요. "

하녀보다 젊은 여주인을 내세운 것도 원작과 다르다고 했다. "서우가 맡은 여주인 역은 어리지만 영리한 야심가예요. 여기에 은이는 순수함으로 맞서지요. 다만 지나친 순수함이 비극을 초래하는 거죠."

3년 전 결혼해 출산한 그도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예전에는 무조건 부딪쳐 바닥과 끝을 봐야 했어요. 평생 함께 살려면 속을 다 뒤집어봐야 직성이 풀렸거든요. 의문을 갖고 피하는 건 비겁하다고 여겼죠.그런데 살다보니 때로는 그냥 피해가는 게 더 현명한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

세계 최대의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꿈을 다 이뤘을 것이라는 주변의 말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칸 여우주연상이 목표였던 적은 없어요. 내가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목표예요. 전 그저 현재를 위해 살아요.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