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감사의견이 거절된 상장사 40개사가 지난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이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무리한 유상증자나 주식 관련 사채 발행이 남발됐다는 지적이다.

감사의견 거절로 인해 상장폐지가 속속 확정되면서 유상증자나 주식 관련 사채 청약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증자나 사채 발행을 주관하는 증권사들로서는 자금조달 기업의 재무제표 건전성을 파악하기 힘들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퇴출 확정되면서 투자자 피해 커져

2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의견거절' 상장사들의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결정금액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1조2634억원(192건)에 달했다. 실제 조달한 자금은 결정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총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상증자가 9161억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CB 1948억원,BW 152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번 감사의견 거절 기업은 유가증권 상장사 10곳,코스닥 상장사 30곳 등 총 40곳이며 회사당 평균 315억원 수준이다.

시가총액이 4000억원대인 네오세미테크는 감사의견 거절이 나오기 3개월 전인 작년 12월 600억원 규모의 CB와 BW 발행에 나서 356억원을 조달했다. 특히 공모CB 청약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퇴출 가능성에 발을 구르고 있다. 쌈지는 400억원대 자금을 조달했고,보홍 에이치비이에너지 서광건설산업 등은 각각 300억원 넘게 끌어썼다.

쌈지 서광건설 에이치비이에너지 등이 속속 퇴출이 확정되면서 투자자 피해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증자나 사채 발행을 주관하고 투자를 권유한 증권사에 항의하고 있지만 보상받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실사는 회계법인에 맡겨야"

전문가들은 현재 증자나 사채 발행 주관 업무로는 해당기업의 회계 건전성을 검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사들도 주관 업무를 하면서 기업 실사(Due Diligence)를 병행하지만 기업과 증권사는 각각 '갑'과 '을'의 입장이 명확해 실사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 증권사 IB(기업금융) 담당자는 "증자를 주관하면서 재무제표 건전성을 살피기 위해 자료를 요청했다가 자칫 주관계약 자체가 무산될 수 있어 실사는 '겉핥기'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환경에서 감사의견 거절 기업이 속출하고 있어 상장사가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조달에 나설 경우 증권사의 주관 업무에 회계법인이 의무적으로 참여해 재무제표의 건전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 증권사 IB 부장은 "회계법인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면 증권사도 회계 관련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증자 절차도 투명해진다"며 "증권사가 받는 수수료를 일정 부분 회계법인에 떼어주더라도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도 "어떤 상장사가 1월에 자금조달에 나선다면 외부감사인에 재무제표를 검증받은 지 6개월이란 시차가 있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회계법인이 객관적으로 자금조달 상장사의 회계장부를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상장사의 분기보고서에 대해서 외부감사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 자금조달 기업들의 재무제표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높아질 수 있는 만큼 투자자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