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눈감고 세상 보는 맹인 검객…애드립 신경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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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새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주연 황정민
이준익 감독의 사극 대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9일 개봉)을 시사회에서 본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흥용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임진왜란 직전 스스로 왕이 되고자 봉기한 반란군 수장 이봉학(차승원)과 그에 맞서는 맹인 검객 황정학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2년 전 시나리오를 봤더니 대사와 지문이 짧고 단순해 배우가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많더군요. 깨알같은 지문은 배우를 틀에 가둬놓거든요. '황정학은 뵈는 게 없으니 내 맘대로 할게요'라고 감독님께 얘기했습니다. 연기의 3분의 1은 애드리브예요. 한바탕 논 거죠."
그는 처음부터 '맹인 검객은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항상 받아치는 검술에 초점을 맞췄다. 두 팔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칼을 춤 같은 동작으로 쳐낸 것.온갖 장난기까지 동원했다. 그의 액션에서 해학과 웃음이 뿜어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숨돌릴 틈 없이 무겁게 전개되는 액션 마디마디에 관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연기를 위해 장애인 학교에서 보름 정도 수업을 참관했다. 그들의 행동을 캠코더로 찍기도 했다. 본 것과 안 본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점자 대본을 장애인들에게 주고는 캐릭터에 대한 검증도 받았다.
"맹인 검객의 칼집 겸 지팡이를 원래는 짧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겨드랑이까지 와야 몸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새로 제작했죠.와이어를 쓰지 않은 맨몸 액션을 펼치느라 3개월 내내 칼싸움 안무를 연습했습니다. "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같습니다. 아이러니죠.눈을 감고도 세상을 관조하는 황정학과 눈을 떴지만 관조할 수 없는 이봉학을 대비시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황정학은 조선시대의 실존 인물이랍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비열한 사장,'너는 내운명'의 순진한 농촌 총각,'구르믈…'의 해학적인 맹인 검객까지 황정민은 극중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고 동화되는 타입이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자신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송강호와는 정반대다.
그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는다. 관객들에게 스스로의 삶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없다면 배우란 직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날선 듯한' 숀 펜을 좋아한다는 그는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라면 돈 아깝지 않다"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