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들을 불러놓고 요란하게 환갑 잔치를 벌이던 때가 불과 10~20여년 전이다. 이것이 가족끼리 조촐하게 마련하는 칠순 기념 식사나 여행으로 바뀌더니 이젠 그마저도 생략하는 집이 많다. 1970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61.9세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8년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0.1세(남자 76세,여자 83.3세)로 치솟았으니 그럴 수밖에.지하철을 타도 65세는 돼야 '공식적으로' 경로석에 앉을 수 있고 환갑이면 '한창 때'라는 농담까지 듣는 판이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젊은이 행세를 하고 싶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엔 몸도 마음도 젊은 '신(新)노인'들이 수두룩하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7%가 노후에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근로활동을 꼽았고,71%는 자녀와 함께 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42%는 '노인 취급 받기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웬만하면 일을 하면서 자녀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해 살겠다는 얘기다.

정년퇴직자 중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뽑아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회사가 있다. 자동차 문을 여닫는 데 쓰이는 '컨트롤 와이어'를 생산하는 고려제강 언양공장이다. 이 공장 생산직 근로자 30여명은 대부분 정년퇴직한 뒤 다시 들어온 '신입사원들'로 평균 나이가 60세다. 자격은 단 두 가지.이 회사 정년퇴직자로 건강하면 된다.

공장을 가동한 지 1년 반 가까이 됐지만 안전사고가 전무한 것은 물론 퇴사자가 한 명도 없다. 월급 160만~180만원에 '체력 닿는 데까지' 다닐 수 있는 조건이어서 다들 신나게 일한다. 회사에선 조명을 밝게 하고 월 1회 건강검진,잔업 시키지 않기 등의 배려를 해주고 있다. 대개 20~30년을 근무한 베테랑들이라 납기나 품질,안전을 강조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노인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뾰족한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웬만큼 나이가 들면 속절없이 일터에서 밀려나고,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사장되고 만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젊음이 대세인 세상이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할 수 있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다. '퇴직자 신입사원' 제도가 신선해 보이는 이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