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름여간의 유럽 방문을 마치고 23일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안팎에선 24일 경영복귀 한 달을 맞는 이 회장의 '유럽구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 복귀 후 삼성은 표면적으로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조직도 회장을 수행하는 비서팀만 만들어졌을 뿐이다. 직접 업무와 관련한 별도 조직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정기인사가 아니면 조직을 흔들지 않는다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들의 움직임은 부산하다. 회장 복귀 자체가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은 데다 일부 사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무언가 정리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면 현안이 돼 있는 휴대폰 사업부문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회장이 "우선 아이폰 수준으로 만들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는 후문이다. 디자이너들을 끌어모으고,휴대폰 운영체제를 만들 소프트웨어팀을 크게 보강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회장의 지시는 삼성전자 트레이드 마크인 추격자 전략을 연상케 한다. 일단 선진 제품과 비교해 약점을 시급히 보강한 후 인력과 자본을 대거 투입해 1등을 추월하는 전략이다.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혀온 소프트 파워 보강작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콘텐츠 등 소프트파워를 보강하라는 회장의 언급이 있었다"며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에 콘텐츠 확보를 위한 태스크포스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애플 아이패드의 한국 상륙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 출시를 위한 준비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아이폰의 아픈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계속 끌려다닐 경우 당분간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아이패드 대항마로 윈도와 안드로이드 두 가지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

승기를 잡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는 16라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17라인 투자결정도 임박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투자로 생산캐퍼를 늘려 치킨게임의 끝을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 이 회장의 최종 결단이 주목되고 있다.

계열사 사업 재배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복귀가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된 삼성SDS와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가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진단 결과 사업포트폴리오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계열사별 사업교환이나 양수도 형태의 재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유럽 방문 기간 동안 동계올림픽 유치활동과 함께 복귀 후 경영구상을 가다듬었을 것"이라며 "10년 후를 내다보는 삼성의 변화가 다음 달부터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