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일 발표한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주택건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절반의 성공'을 점쳤다. 지방 미분양이 많은 중소 건설사들의 유동성 해갈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주택거래 활성화를 기대할 만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는 평가다. 정부가 총 5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미분양 주택을 사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만큼 건설사들이 구조조정과 고분양가 해결 등에 나서도록 강제함으로써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주택업계 "유동성 숨통 트인다"

정부는 2009년 3월 16만6000채에 달했던 미분양 주택이 지난 2월 말 현재 11만6000채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소형 주택건설 전문업체를 중심으로 자금난이 심화돼 금융권과 하도급 업체의 연쇄 부실이 우려되고 건설 일자리마저 줄어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책의 초점도 주택업체 자금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인 미분양 감축에 맞췄다.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면 미분양 주택 매입규모는 총 4만채에 달한다. 현재 11만6000채인 미분양 주택수는 7만5000채 수준으로 떨어진다. 한만희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은 "주택시장이 안정되는 데 바람직한 미분양 주택규모는 약 7만~8만채"라며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끌어 모아 4만채를 줄이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실제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4~2006년에도 미분양 주택수는 5만7000~7만4000채 사이를 오갔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 정도 수준까지 미분양 물량이 줄어들면 주택건설업체들의 단기 유동성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고,부동산 거래시장의 공급초과 현상도 다소 완화될 것으로 관련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권오열 한국주택협회 상근 부회장은 "주택건설업체들의 유동성을 압박하는 뇌관인 미분양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주택보증의 미분양 물량 매입은 환매조건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시장 상황이 호전되면 건설사가 다시 사오면 되고 리츠 · 펀드 등에 대한 금융지원도 추가됐기 때문에 급한 불을 끄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일종의 '악성재고 떨이'를 위한 자금지원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정재훈 동양종금증권 골드센터 PB는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가격대가 분양가의 절반 이하여서 서울보다는 지방,자금력이 있는 대형업체보다는 중견 · 소형 건설업체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회생책으로는 한계

하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이번 대책이 근본적인 부실을 해소하고 체질을 강화하는 데엔 다소 미흡하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진행 중인 중견 건설사의 한 임원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려면 수술대에 올리든지,면역력 강화를 위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며 "이번 대책은 죽 한 그릇 던져주고 생명을 연명하라는 격"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 침체를 정부는 나름대로 주택시장과 가격을 안정화시킨 결과로 판단하는 것 같다"며 "시장에 다시 투기바람이 불지 않도록 미분양 매입 정도로 대책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현장에서 미분양 물량을 처리해 현금화하는 방식을 보면 분양가를 20~30% 낮춰 저가 매수세를 유인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라며 "나중에 되살 수 있다고 해도 이자비용을 시중금리 수준에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절반 가격에 매입하는 것은 건설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덕적 해이' 경계해야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과 함께 사업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무리한 사업 확대로 문제를 악화시킨 주택건설업계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중소 · 중견 주택업체들의 유동성에 숨통이 트이고,미분양 물량이 줄어들면 채권단 등을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견실한 건설업체도 있지만 무분별한 투자로 미분양 사태를 양산한 무책임한 건설업체도 적지 않다"며 "미분양 해소와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건설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엄정한 대응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가을 이후 정부와 금융권에서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지나치게 많이 지원한 측면이 강하다"며 "한 해 평균 200개 이상 건설업체가 문을 닫는데 작년엔 100개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지원책이라야 갑작스런 건설업계 부도 충격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장규호/홍영식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