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정오 서울여대 인문경영관 111호.강의실을 꽉 메운 150여명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정명 한국교육정보콘텐츠 이사(23)에게 쏠렸다. 이날 수업은 '부자학 강의'인데 실제 부자가 직접 나와 특강을 하는 시간이었다. 이날은 20대 초반의 '나이 어린' 김 이사가 바로 부자학 특강의 주인공이었다.

검정 뿔테에 정장 재킷을 입은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여자대학 강의는 처음인데,이럴 줄 알았으면 예쁘게 차려입고 올 걸 그랬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65억원이란 엄청난 거금을 벌었던 성공 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김 이사가 처음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어릴 적 셋방 살면서 얻어 먹었던 양념 치킨 맛을 잊지 못해 하루는 부모님께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비싸다'며 사주지 않았고,이게 마음의 상처가 돼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혔다. 강의도 스티브 잡스처럼 키워드 하나씩을 제시하면서 풀어나갔다. 그의 슬라이드가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학생들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학생들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 보였다. 도혜진양(공예학과 4학년)은 "기대만큼 재치있고 새겨들을 얘기들이 많았다"며 "특히 따라하라,상상하라,실천하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부자,그들은 누구인가…부자학 강의

2004년 국내 최초로 부자학 강의를 시작한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마케팅 전공)는 부자 고객을 상대로 하는 VIP마케팅 공부를 했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그의 주제였고,귀국해서도 관심분야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국내 기업들과 부자학 관련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대학에 와서보니 학생들이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 입는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이에 '부자'를 주제로 강의를 한번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부자 되세요'라는 카드회사 광고가 화제가 되던 시절.때마침 학교 측에서도 신선한 과목을 개설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부자학'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

강의를 개설할 당시 고민도 많이 했다. 기독교계통 대학에서 '부자학'강의를 하는 게 조금은 부담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학 강의는 히트를 쳤다. 2004년 1학기 때 개설된 '부자학'은 서울여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무려 350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한 교수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학생의 반응과는 달리 변변한 교재도 없는 데다,성적을 어떻게 매길지에 대한 해답도 안 섰기 때문이다.

한 교수의 부자학 강의에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 직접 부자를 만나고 인터뷰하는 과제가 있다. 이날 초청강사인 김 이사도 지난해 수업을 들었던 최슬기양(체육학과 2학년)의 추천으로 가능했다. 최양은 수업과제를 위해 인터넷에 부자를 수소문했고,한 친구가 쪽지로 김 이사를 추천했다. 어렵게 인터뷰를 추진한 최양은 높은 인터뷰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한 교수는 "부자 인터뷰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최양처럼 새로운 부자를 발견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부자학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폭발적이다. 학생들은 '정말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부자의 실상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는 평가를 해줬다. 또 학생들이 만난 다양한 '한국 부자'의 사례는 한국에서 부자학이 학문적으로도 발전하는 데 중요한 밑받침이 될 풍부한 데이터를 공급한다.

◆부자학 강의 열풍…전국에 10여개 개설

서울여대의 부자학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 대학에 '부자학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에 생긴 부자학 강의들은 한 교수의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는 국내 부자학의 전형을 만든 셈이다. 작년 2학기 처음으로 부자학 교양 강의를 개설한 이의택 대전대 교수(재무관리 전공)는 한 학기에 두 명의 부자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각각 A4용지 5페이지,총 10페이지로 쓰도록 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보면 부자들이 의외로 검소하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감동을 받는다며 특히 유산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보다는 자수성가형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도 놀란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수업을 들으면서 저축할 수 있는 목표금액을 정하도록 했다. 액수는 상관없다. 학생 스스로 정해서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는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저축을 해봤다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경제 관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평택대 변병문 교수(경영전략 전공)도 부자학 강의를 올해 처음으로 개설됐다. 변 교수는 "10여명의 학생이 듣고 있다"며 "수강신청 인원은 더 많았지만 정원 제한 때문에 받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부자학은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에 주안점을 둔다. 또 학생들에게 스스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강의 초반부는 종잣돈 만드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닌 행복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강조한다. 행복한 부자의 길은 바로 나눔의 실천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부자학 강의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게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