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때리기'에 먼저 나설 필요없어
IMF(국제통화기금)는 최근 은행세를 두 가지로 분류해 제시했다. 하나는 금융안정부담금(FSC · financial stability contribution)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활동세(FAT · financial activity tax)이다. 전자는 위기 때 금융권에 지원할 비용을 미리 징수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해 일명 '오바마 택스'로 불리는 세금이 이에 해당된다. 은행은 예금에 대해 예금보험료를 지불하고 있으므로 이 세금은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대해 일정률의 세금을 부과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일종의 벌과금이다.
또 하나는 금융활동세이다. 은행의 이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거나 은행이 임직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경우 부과하는 세금이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들이 임직원들에게 천문학적인 보상을 해왔음이 드러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금융활동세는 이런 여론까지 반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금융안정부담금 형식의 세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은행의 단기외화부채가 금융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는 논의를 배경으로 외화차입에 대한 금융안정부담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G20 의장국으로서 올해 G20의 주요 아젠다인 은행세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론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단기외화부채를 규제하면서 의장국으로서의 체면도 살리게 되니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금은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단기외화차입에 대해 세금을 징수할 경우 은행이 빌려온 자금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운용하면서 안정부담금을 기업에 전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규모 감소 효과가 거의 없어질 수 있다. 아울러 꼭 필요한 자금이동에 대해 비용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자금시장을 왜곡시키는 효과는 없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문제다. 규제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세율을 너무 높이는 경우 한국지점 폐쇄를 검토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 문제에 있어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주요국들과 보조를 맞춰 천천히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며칠 전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도입의 원칙만을 천명한 채 구체적인 논의를 다음 번으로 미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찬성인 반면 캐나다와 신흥시장국은 은행산업 위축 등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24일 발표된 공동성명을 보면 "은행시스템 정비를 위한 정부개입으로 소요된 비용을 금융권이 공정하고 실질적으로 분담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IMF의 최종보고서를 받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 개별 국가들의 여건을 고려해야 할 것" 정도의 원칙적 표현만이 삽입됐다.
국내 은행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그나마 최근 위기에서는 선방을 한 모습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은행 때리기'의 분위기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적극적으로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고 보인다.
시속 200㎞로 달리던 차가 사고 난 것을 보면서 시속 50㎞로 달리던 차도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70~80㎞ 까지 속도를 서서히 높여서 빨리 달리던 차와의 속도차이를 줄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때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