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공공개혁으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로 인한 물가하락) 경제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미 · 일 관계 악화로 지지율이 급락해 사퇴 위기에 몰린 하토야마 총리가 공공기관 대수술에 다시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예산 절감을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과감한 공공개혁을 연출해 국민 지지를 끌어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토야마 정부는 또 외국인 부유층의 의료 관광을 위해 '의료비자'를 신설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의료 관광을 신성장동력화해 한국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역시 분위기 반전을 위한 승부수 성격이 강하다.

◆첫날부터 '예산 삭감' 강공

일본 정부는 독립행정법인의 사업 폐지나 축소 등 공공기관 대수술을 재개했다. 지난 23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행정쇄신회의를 열고,외무성 산하 국제협력기구(JICA) 등 47개 독립행정법인의 151개 사업에 대한 타당성 심사에 착수했다. 의회 의원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행정쇄신회의는 각 독립행정법인을 존속시킬지 여부를 비롯해 사업의 필요성과 효과를 평가하고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넘길 부분이 없는지 점검한다.

첫날 회의에서는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엔차관(ODA)을 집행하는 국제협력기구의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도쿄시내 노른자위 땅에 있는 본부 건물의 임대료가 연간 27억엔(약 320억원)에 달하는 사실이 드러나 이것부터 당장 시정 조치를 요구받았다. 임직원들의 높은 보수와 해외 체제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산업성 산하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는 지원 대상에 대한 심사 기준과 방식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자산 2200억엔 가운데 2000억엔을 국고 환수조치하기로 했다. 행정쇄신회의는 이날 심사한 28개 사업 중 21개를 폐지 또는 감축 대상으로 판정했다. 이들 사업의 전체 사업비는 작년 기준으로 2800억엔이다. 47개 독립행정법인에 대한 사업 타당성 검토는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하토야마 정부는 작년 11월 실내 체육관에서 올해 예산에 대한 대대적인 타당성 심사를 벌이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도 했다. 여기서 1조7000억엔을 절감했다. 당시 '정치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번 공공기관에 대한 대수술로 다시 국민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과 의료관광 경쟁

일본 정부는 한국 등으로 향하는 외국인 부유층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의료비자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6월 발표할 '신성장 전략'에 의료 분야 핵심 정책으로 의료비자 신설을 넣기 위해 조만간 법무성 외무성 등과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은 외국인 환자가 일본 병원을 이용할 경우 우선 단기체재(관광) 비자로 90일간 머문 뒤 장기 입원이 필요할 때는 체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하지만 질병 증세만으로 체재기간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의료비자가 신설되면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 환자는 병원의 증명서만 갖고 자유롭게 체재기간을 늘릴 수 있다. 수술 후 경과를 보려고 다시 입국할 때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된다.

후생노동성은 또 외국인이 믿을 만한 일본 병원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의료기관의 의료 수준을 보증하는 인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의료 전문지식을 갖춘 통역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일본의 의료비자 신설은 한국이나 인도로 향하는 중국 부유층 고객을 일본으로 끌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자기공명영상(MRI) 장비 보유 등 일본의 의료 인프라 수준이 높아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일본의사회가 "일본인 환자 치료가 뒤로 밀릴 수 있다"며 반대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후생노동성은 이를 고려해 신성장 전략에 '국민 의료를 저해하지 않는 것이 대전제'라고 명시할 방침이다. 하지만 관계부처나 업계 단체와 의견 조정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공산도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