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는 물론 천억원대 돈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정부가 5조원을 들여 미분양 주택 4만채를 줄이겠다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난 23일 매입자금을 마련해야 할 책임을 떠안은 주택 관련 공기업의 한 임원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정부는 '폼'나게 발표했지만 '뒷감당'은 공기업들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대한주택보증이 3조원을 동원,2만채의 미분양 주택을 사기로 했다. 당초 이 회사의 미분양 주택 매입 재원은 5000억원 정도였으니 2조5000억원을 추가로 융통해야 하는 처지다.

주택보증이 보유한 현금(예금 포함)은 작년 말 기준으로 2조2000억원.이 돈은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 사업추진이 어려운 주택건설현장에 공사비 등으로 들어가야 할 자금이다.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 자금도 넉넉지 않다. 실제 주택보증은 작년 7322억원의 손실을 냈다. 보유 현금도 작년에만 3조3000억원에서 1조1000억원이 줄었다.

주택금융공사도 1조원 규모로 건설사들의 회사채를 사야 한다. 회사채를 묶어 신용도를 높여 유동화시키기 때문에 1조원이 다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용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돈이 들어가니 부담은 마찬가지다. 묶어 파는 자산담보부증권(P-CBO)도 건설사들의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얼마나 매입할지 낙관할 수 없다. 안 팔리면 할인율이 커질 수(금리 인상)밖에 없는데 이 경우 그만큼 공사의 부담이 된다.

이번 대책으로 올해 미분양 주택 1000채를 매입해야 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작년 말 기준으로 LH 부채는 109조원에 달한다. 국내 공기업 부채의 절반을 넘는다. 이런 회사가 1000채를 사들여 수익성이 낮은 임대주택으로 돌린다고 한다. 공사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주택기금과 재정 등으로 1200억원을 지원해 준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회사는 부실화를 막기 위해 작년 12월에만 유상증자를 세 번이나 했다.

상황이 이러니 주택 관련 공기업들의 부실 정도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반 회사라면 이런 기획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기업 관계자의 말이 귓전에 계속 남는다.

김재후 건설부동산부 기자 hu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