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1년짜리 예금 금리가 사실상 연 2%대에 진입했다. 사상 최저 금리 수준이다. 은행들이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1년만기 정기예금의 고시금리는 '연 3% 초반'이지만 정작 은행 창구에서는 연 3%대 금리의 예금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연 4~5% 금리를 주는 예금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놨던 은행들이 이제는 이자 주는 것 자체를 아까워하고 있다. 금리를 좀 더 달라고 애원하면 "다른 은행으로 가보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은행에 돈이 남아 돌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부동산시장에서 갈 곳을 잃은 돈이 은행으로만 몰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난해 말 2조2000억원 줄었던 국내 은행들의 정기예금은 올 들어 고금리 예금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1월 23조1000억원,2월 14조8000억원 늘었다.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에 은행들이 미리 돈을 당겨 모으는 투기적 영업을 했고,여기에다 금융감독 당국이 예대율(총대출/총예금) 규제를 강화해 장단을 맞춘 탓이다.

주식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부동산시장의 추가 하락 우려로 금융권 주변에만 맴돌던 돈이 은행으로 대거 몰려들자 은행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고시금리는 24일 기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연 3.2%,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연 3.1%이지만 실제로 은행 지점을 찾아가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국민은행의 국민수퍼정기예금은 1000만원 이하이거나 우대금리 적용 대상이 아니면 연 2.7%의 이자를 제시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민트정기예금도 우대 금리를 포함해야 연 3%대다. 한국씨티은행의 웰빙예금과 외환은행의 예스큰기쁨예금은 연 2.5%의 금리를 주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대기업이나 기관이 맡기는 예금은 거절하고 있으며 개인 예금은 1억원 정도까지는 받지만 지점장 전결금리를 더 얹어주는 것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받아둔 예금을 연 2%대의 자산운용사 머니마켓펀드(MMF)에 맡기는 상황에서 돈을 더 받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기는 너무 위험하고,가계대출은 규제로 꽁꽁 막혀 있고,대기업들은 오히려 돈을 맡기려 달려드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낮춰도 예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주에도 기준이 되는 내부금리를 0.1%포인트 인하했는데 예금이 계속 몰려 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