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우리나라와 북반구 정반대쪽에 있는 아일랜드에 갔다. 독일 사람 벨스씨를 회상하면서 떠난 여행이었다. 아일랜드는 그가 독일어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길 원했던 곳이다.

벨스씨는 십여년 전 우리나라 독일문화원에 근무할 때 처음 만났다. 그 후 알고 지내면서 나의 지인들과도 여행과 등산을 같이할 만큼 친숙한 사이가 됐다. 언젠가 그와 설악산 봉정암을 등정한 뒤 가야동계곡 쪽으로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그는 그때가 '일생 최대의 모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4년 전 정년 퇴임 후 고향 브레머하펜(Bremerhaven)으로 돌아갔는데 작년에 그의 부음을 들었다. 재작년 그의 고향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벨스씨는 아일랜드를 좋아했다. 아일랜드는 내가 대학 시절에 본 '라이언의 처녀'에서부터 최근 '원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영화로,그리고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와 베케트의 희곡 '고도(Godot)를 기다리며'로 조금 친숙한 나라다.

그런데 아일랜드 여정은 런던에서의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사고로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지연되는 바람에 10분 전쯤에야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출발 게이트는 닫혀 있었다. 그때의 그 황당함이란….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정에서도 이런 돌발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교훈을 지금도 되새겨보곤 한다. 다음날 꼭두새벽에 공항으로 다시 갔으나,장사진을 친 휴가객 때문에 또 낭패를 당할 뻔했다. 추가로 돈을 더 내는 우대카드(Priority Card) 덕분에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급행료가 여기서 이렇게 위력을 발휘할 줄이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일랜드는 들어오기까지의 고초를 충분히 보상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의 풍광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빙하가 녹은 호수,오염되지 않은 개울,깎아지른 해안선 절벽 위 도로,자전거 길 등 아름다운 경치가 끝없이 이어졌다. 황무지에는 작은 야생화가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너른 풀밭 여기저기에 양들이 하얀 돌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다. 모헤르 단애(斷崖)로 하얀 파도가 거세게 부딪히고 있었고 그 파도를 실은,험한 대서양은 미국 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길가에 간혹 눈에 띄는 '시골집 매각'이라는 팻말이 묘하게도 벨스씨를 연상시킨다. 벨스씨가 왜 말년을 여기서 보내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되는 아일랜드 역사는 슬프다. 영국에 대한 끝없는 저항,1800년대 대기근에 따른 엄청난 아사 그리고 나라를 등진 대규모 이민.그 당시 미국 이민 배가 얼마나 많이 난파당했으면 그 배를 목관선(wood coffin ship)이라고 불렀을까.

벨스씨는 퇴임 후 다리를 다친 노모를 돌보느라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모친이 "내가 죽어야 아들을 자유스럽게 해 줄 텐데"하면서 눈끝을 흐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벨스씨 집 정원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방아풀과 접시꽃이 올해도 잘 자라고 있을까.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juhlee@hwaw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