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같은 주장들은 섣불리 출구전략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이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든가 불어난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논리까지 다양한 논거들도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합창들은 보기에 따라서 무소신에다 잔뜩 겁먹은 정부 당국자들의 '괜찮아!' 동맹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구전략 국제 공조론이나 시기상조론이 '우리 지금 떨고 있니'식의 약자들의 변명이요 핑계라면 이는 진실의 은폐에 불과하다. 진실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중앙은행 제도의 실패에 오히려 그 원초적 증거를 남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10여년간 너무도 많은 돈이 풀려나가 아무도 화폐의 타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진실 말이다. 중앙은행 제도가 본격 도입된 20세기 들어 권력을 틀어쥔 중앙은행은 안전판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위기의 원인이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린스펀이 금융시장에 독약을 풀어먹였던 과정만 하더라도 그랬다. 어리석거나 탐욕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대중들이 그를 일컬어 경제대통령이니 황제라고 칭송해댔다. 우스꽝스런 인기영합주의가 군불을 땠다. 물론 지금의 금융위기가 중앙은행 제도의 참담한 실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입증될 것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통화량을 국가가 규정한다는 전제와 가설부터가 타당한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되는 것도 그럴 것이다. 상품은 시장의 자유인데 그 상품을 뒷받침할 돈의 수급은 정부가 정한다는 이 원초적 불균형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아마도 제2 하이예크와 제2 케인스의 논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물가 목표라는 준칙도 마찬가지다. 지표 물가라는 것이 과연 급변하는 현실 세계에서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 것인지는 아예 논의조차 없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폴 크루그먼은 무모하게도 인플레를 만들자,돈을 더 풀자는 소위 양적완화라는 기이한 발상을 들고나와 일본을 처방했지만 지금 일본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예금 이자율이 3% 밑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3%라면 이제 예금은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보관료를 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은행이 보관료를 받는 시절도 있기는 했다. 유동성 함정이라는 그럴싸한 단어가 있다고 하지만 이자의 가격기능이 이다지도 작동불능인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무슨 거만한 얼굴을 들고 있는 것인지….국제 회의들에서는, 공조전략이라는 있을 법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합창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국가마다 성장률이 다르고 상품 시장의 구조 또한 다른 것인데 굳이 공조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진정 저마다의 감추어진 속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심은 국가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환율을 유지하겠다는 동상이몽에 불과한 것이어서 공조는 언제나 실패로 귀착되는 죄수 딜렘마의 한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부는 중앙은행에 책임을 미루고 중앙은행은 적자재정을 핑계대는 것도 비겁자 동맹과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결국 예금과 대출의 정상적인 자기조절기능은 이렇게 중단되고 말았다. 예금이 벌을 받는 지경에서조차 투자는 꿈쩍않고 부동산도 주식도 시들하다면 고무줄은 지나치게 늘어져 탄성치는 이미 제로에 수렴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자율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이제는 통화 정책의 정상화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금리 인상 여부가 아니라 금리기능을 정상화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축이 벌 받는 상황은 통화정책이 오작동하고 있다는 하나의 예후일 뿐이다. 국가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