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쓰나미(지진 해일)가 일고 있다. 지난해 말 인도를 강타하더니 올 들어 베트남을 집어삼켰고,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서남아시아에서 다가오는 속도가 워낙 빨라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태국에서 시작된 통화가치 하락의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다 크게 당했던 1997년 외환위기를 연상시킬 정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아시아 인플레이션 쓰나미의 진앙지는 인도다. 도매물가 상승률을 인플레이션 잣대로 쓰고 있는 인도는 인플레이션율이 지난해 10월 1.5%(전년 동월 대비)에 머물렀으나 이후 갑자기 급등세를 탔다. 11월 5.6%로 높아진 뒤 12월 9.1%로 치솟았다. 올 들어서는 더 뛰어 지난 2월과 3월 각각 9.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원유와 곡물 가격 급등이 인도 물가를 강타한 것이다. 지난달 인도의 연료비는 12.7% 뛰었고 식료품비는 16.7% 올랐다.

베트남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2월 통화가치를 3.25% 절하했다. 이로 인해 수입물가가 폭등했다. 베트남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월 7.6%,2월 8.5%,3월 9.5%로 치솟았다.

인접국들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까지 1~2%대에 머물렀으나 지난달에는 3~4%로 높아졌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불안하다. 지난달 중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였으나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5.9%에 달했다. 생산자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사동철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빠른 경기 회복세에 따른 수요 증가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아시아 지역의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아시아에 불어닥치고 있는 인플레이션 쓰나미를 피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직까지 물가 지표는 양호하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3%로 2월(2.7%)에 비해 낮아졌다. 한국은행도 올해 전망치를 당초 2.8%에서 2.6%로 낮췄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 같은 안정세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방어막을 단단히 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국제유가 등이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 기초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제전망을 처음 내놓은 지난해 12월이나 수정치를 제시한 지금이나 올해 국제유가를 배럴당 83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두바이유는 배럴당 73달러에서 83달러로 올랐다. 올해 말께 100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은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산물 작황 부진과 어획량 감소,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인한 생산자물가 불안,점차 거세지고 있는 임금인상 요구 등 물가 불안 요인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 역시 물가 안전지대는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