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가적 차원에서 나온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현 정부는 광역경제권 정책을 추진해온 데 이어 최근 남해안 선벨트 개발이란 초광역경제권 사업을 제시했다.

하지만 수도권에 정치,경제,문화,스포츠,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실정에서 과연 인적,산업적 분산 노력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적지않다. 수도권으로의 지속적인 집중은 수도권 인프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지방의 공동화를 촉진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추락시킬 수 있다. 수도권은 이미 OECD 내 주요 대도시권 중 도쿄권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 규모가 크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방경제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것이다. 지방경제가 커지면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로 인해 인구가 분산되며,소득이 높아져 문화와 복지 수준도 향상된다. 이것이 지방과 수도권이 윈-윈하는 길이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경제에서 지방이 발전하려면 지역적 산업 특화가 요구된다. 마이클 포터 등 저명한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제 산업경쟁은 기업 수준을 넘어서 지역을 단위로 전개되고 있다. IT 산업에서 실리콘밸리가,영화산업에서 할리우드가 그러한 것처럼,특화된 산업 집적지들이 산업경쟁력의 토대로 등장한 셈이다. 국내에서는 수도권의 IT산업,거제의 조선산업,창원의 기계산업 등이 좋은 사례다.

특정 산업 분야의 연관 기업들이 일정한 공간에 함께 모여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산업집적지를 이루는 현상을 산업클러스터라고 한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중관춘 같은 경쟁력 있는 선도기술형 산업 클러스터를 개발하려면 특정 산업분야의 기술선도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선도 기업들이 일정 공간에 모일 경우 시너지가 나타나면서 기술학습과 혁신이 촉진된다.

문제는 특정 산업 분야의 국내외 기술선도 기업을 이끌어오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이들 기업을 데려오려면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기술선도 기업들은 연관 기업들이 집적되어 있는 곳을 선호하면서 저렴하고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형 산업 용지를 희망한다.

이와함께 국내외 기업을 유치하려면 입지보조금 등 기업 인센티브와 기업유치 전담팀이 제공하는 원스톱 지원서비스도 도움을 준다. 유능한 산업 인력의 안정적 공급도 기업 유치와 육성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 정부는 1970년대 이후 지방 곳곳에 전문화된 산업단지를 개발해 경제적 번영의 기초를 만들었다. 당시에 조성된 산업단지들은 단순히 제조공장들을 모아놓은 공업단지에 그치지 않고 지역적인 산업특화를 실현했고 산업도시들 간의 분업과 연계를 도모한 것이었다.

현재 지방에 있는 산업클러스터들은 다시한번 도약해야한다. 그 목표는 산업클러스터의 기술 수준을 중간기술형에서 선도기술형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경쟁력을 갖춘 기술선도 기업들을 유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 참여정부의 지역경제정책이 지역혁신체계 구축에 집중돼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이제는 지역적 산업특화 전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방경제의 특화발전은 미국 유럽 등 선진 각국과 중국 인도 등 후발공업국들이 모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세계화시대의 핵심적인 경쟁전략이다. 정부는 광역경제권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남해안 선벨트와 같은 초광역경제권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이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권오혁 < 부경대 교수·경제학 >